아이가 태어나면 기쁨이 크지만, 쉽지 않은 양육이 시작됩니다. 한 두 시간마다 엄마는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이가 한 돌 정도 되면 용을 쓰면서 스스로 일어나서 걷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 온 집이 난리가 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계시면 탄성을 지르면서 좋아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것처럼 신앙도 성장해야 마땅합니다. 성경에서는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5:11~12) 히브리서 저자는 말해주어야 할 귀하고 아름다운 비밀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멜기세덱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더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무 어리니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알아듣지 못할 사람에게는 말을 못합니다.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에서 ‘둔하다’는 성경 원어적으로는 '나태한, 게으른' 또는 '둔한, 우둔한'의 의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믿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믿은 지 오래 되어서 선생이 되어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기초적인 것들을 다시 배워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젖을 떼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크면 고기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열 살, 스무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엄마 젖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합니다. 걷고 뛰어야 하는데 기어만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어린아이로만 머물러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만약 우리 신앙이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우리는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병이 깊은 아이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신앙 성장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의 신앙 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믿은 지 오래 되었다고 자랑합니다. 많이 안다고 말합니다. 교사도 오래 했고, 성가대도 했고, 전도도 해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 봉사를 많이 하느냐가 신앙 좋은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도는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관계 속에서 얼마나 섬길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용납할 줄 아느냐로 나타납니다. 신앙은 일상의 삶에서 드러납니다. 말씀은 배웠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렸는데 집에 가서 남편도 안 챙겨주고 집안 살림은 안중에도 없다면, 직장에 나가서 푸념만 하고 남 탓만 하고 있다면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세상 속에서 버릴 것은 버리며,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하며, 해야 할 것은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어린 아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으나,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은 원어로는 감각을 사용해서 알아차리고, 배우고,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에게 주신 지적이며 감각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구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나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내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붙잡고 있고,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하면서 말씀을 내 삶으로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깨달았으면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잘 살아지던가요? 세상이 그냥 놓아두던가요? 방해와 유혹과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단이 빼앗아 갑니다. 기억하지 못하도록, 세상의 많은 일들로 인해서 잊어버리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취업, 입시, 승진, 자격증, 사업, 살림, 동창회,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드라마, 영화 등에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서 넘어져 버립니다. 돈 걱정, 세상 염려, 많은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연단을 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는 웃통을 벗고 운동하고, 연습하고, 훈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받은 말씀을 가지고 땀 흘리는 운동과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고단하고, 귀찮지만, 힘겨운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적용해야 신앙은 성장합니다. 승리한 경험이 있으면 또 다른 어려움이 와도 견디고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는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계속 닮아가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존재 자체로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 자녀를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해드려서는 안 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땅을 주셨건만 원망 불평하면서 광야에서 죽어가는 모습이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성장할 때에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비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라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