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설교를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혼한 서른 세 살의 젊은 남자가 집에서 약간의 돈과 컴퓨터를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별로 훔쳐갈 것이 없었는지 도둑놈이 쓰던 컴퓨터를 들고 간 것이죠. 도둑맞은 것에 기분은 나쁠 수 있지만 큰 피해가 아니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에게서 이상한 동영상을 보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 남자가 생각해보니 결혼 전에 사귀던 애인과의 성관계를 재미삼아서 찍었던 영상이었습니다. 도둑맞은 컴퓨터 안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 남자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웹사이트 업체에 찾아가서 동영상 삭제를 요구했습니다. 다행히 웹사이트 업체의 영상은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퍼진 동영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나?’ ‘처가 사람들과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동영상을 보면 어떻게 하나?’하는 근심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는 제대로 잠을 못자고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간과 위를 상하다가 건강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모든 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죄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죄는 사람의 피를 말립니다. 죄는 사람을 죽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죄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한 존재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는 죄의 심각성을 알기 때문에 죄 사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병들고, 아프고, 사고 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시달립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추석 명절에도 장례식 두 곳을 다녀왔습니다. 죄는 절대자와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자와 단절되었으므로 부족함, 공허감, 결핍을 느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선행, 도덕, 공부, 권력, 돈으로 자신의 결핍을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해결해서 불로장생하게 되었나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해결해서 영원불멸하게 되었나요? 아닙니다. 죄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이슈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에 더 접근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죄 사함을 말하면서 복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행3:25)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됩니다. 그 씨는 바로 예수입니다. 모든 족속이 예수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우선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가난하거나 궁핍하거나 쪼들리는 것보다 누릴 줄 알고 베풀면서 삽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정직하고 욕심 부리지 않고 감사하고 지혜와 관계의 능력이 있게 됩니다. 많아서가 아니라, 차고 넘쳐서가 아니라 자족할 줄 알게 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존경받으며 삽니다. 왜냐하면 맡겨진 일을 할 때 하나님께 하듯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가족이 친밀하고 자녀에게 공경 받으면서 삽니다. 가족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이 우리가 받는 복의 전부라면 굳이 예수 믿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열심히 돈 벌고 욕심 부리지 않고 건강관리 잘하고 정직하게 살면 됩니다. 그럼 어느 정도 세상의 복을 받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받을 복의 전부가 아닙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죄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돈과 힘과 권력이 있으면 어떤 문제도 없고 행복할까요? 정주영 회장 가문이 행복해 보이던가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행복해 보이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루터라는 기독교 종교개혁자는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면서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가 수도사로 지내면서 로마의 ‘빌라도 계단’이라고 하는 곳에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죄책감과 씨름했습니다. 그는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맨 무릎으로 대리석 계단을 올랐습니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이 터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코자 하는 열망(熱望)에 고통을 무릅쓴 채 계단 오르기를 계속했습니다. 급기야 무릎 힘줄이 드러나고 뼈가 대리석에 닿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참고 계단 오르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순간 그에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이렇게 고행을 통하여 속죄함과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아닌데?"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 사함이 얼마나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죄 사함을 원리로만, 이론적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고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어, 나는 의인으로 칭해졌고, 언제 죽어도 천국갈 수 있어”라는 개념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개념을 넘어섭니다. 죄 사함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할 때에 구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죄 사함의 은혜에 감격스러워서 그 믿음이 삶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비참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