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요. 부모가 힘이 없고,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녀의 고집을 꺽기 쉽지 않아서 나온 말입니다.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데 무작정 떼를 쓰는 자녀가 안쓰럽고,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부모들이 져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들이 그렇다면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야곱이 형 에서를 위하여 무려 550마리의 가축을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몇 떼로 나누어 보내고 자신은 뒤에 쳐졌습니다. 야곱은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만나려는 전략으로 예물을 앞서 보내고 가족들과 밤을 지냅니다. 그러다 가족들을 얍복 강을 건너 보냅니다. 홀로 남은 야곱이 한 사람과 치열한 씨름을 합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자신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끈질기게 붙잡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이름을 듣고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하고는 야곱에게 축복하고 떠납니다.
전통적으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사건은 야곱의 간절한 기도이며, 복을 받으려면 그 정도는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는 해석을 해왔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야곱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는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기도하면서 소나무 뿌리를 하나 씩은 뽑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기도했습니다. 금요 철야기도를 시작하면 새벽2~3시까지 한 후에 잠깐 쉬고, 새벽4시에 또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수련회를 가면 밥만 먹고 집회에만 참석해야 했습니다. 야곱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쳤고, 그렇게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야곱에게서 간절함과 열정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가 20, 30년 전의 뜨거운 열정과 간절함이 사라진 듯합니다. 우리 선배들의 열정과 뜨거움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씨름을 해석하면서 그의 지금까지의 삶을 안다면, 야곱처럼 열정적으로 간구해야 한다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잔꾀, 자기 열심, 속임수 때문에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에서를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야곱은 믿음도 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가라 해서 가고는 있지만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미 벧엘에서 약속을 주셨고, 20년이 지나서 고향으로 가라 하시면서 함께 하겠다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시면서 에서의 어떤 위협에서도 호위하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불신과 두려움으로 잔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야곱입니다.
야곱은 결국 씨름에서 이깁니다.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얻어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고, 에서와 싸워서도 이겼고, 아버지도, 라반과 그의 아들들도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야곱아, 네가 이겼다!” 그런데 하나님과 싸워서 이기면 좋을까요? 아니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 하나님이 싸움의 대상인가요? 다시 말하면, 자녀들이 부모와 싸워서 이기면 좋습니까? 부모 이겨먹는 자녀들이 잘 되던가요? “이건 아닌데” “아직 때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지만 부모가 져줍니다. 부모 이긴다고 잘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인 분입니다. 부모 이겨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을 이겨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싸우자고 덤벼드는 자녀를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겨먹으려고 했던 야곱아, 지렁이같은 야곱아, 네가 이겼다"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지렁이처럼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야곱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져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이겨먹고, 지배하는 승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제는 속이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당신에게 하나님은 싸우고, 씨름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좋게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경배와 신뢰의 대상이지 싸움과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야곱은 사람과 경쟁하고, 씨름해서 이겨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고 험악한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싸움닭으로 사니 얼마나 힘듭니까? 사람은 경쟁과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이겨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