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완악한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서 마지막 재앙을 애굽에 내릴 것이다. 바로의 장자부터 여종의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음을 당할 것이다.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곡성이 울릴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과 짐승 중에서 어떤 죽음도 없을 것이며 개 한 마리의 혀조차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출11:4~7) 모세는 하나님의 말을 대언하고는 바로에게 크게 노하면서 나왔습니다. 흑암 재앙까지 아홉 번의 재앙이 임했지만 바로는 완악함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자기의 장자가 죽을 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이번이 열 번째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마지막 경고라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한 번의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마지막 경고도 무시하고 외면해 버렸습니다. 결국 바로를 포함한 애굽의 모든 사람들의 장자와 가축들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지막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에게 있어서 마지막하면 세상의 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 즉 마지막이 다가올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종말의 때에 마지막 기회를 주실텐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우리는 종말의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종말은 언제이며 종말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 팔고, 땅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서 하늘만 쳐다보면서 기다릴 것인가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로 작별 인사를 하고 예수님 오실 것을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요?
사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세상의 종말은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정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와 시기는 있습니다.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개인에게도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음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순서가 있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습니다. 세상에 먼저 왔다고 먼저 죽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왔다고 나중에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종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오랜 세월을 살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음 후에 오는 영생의 시간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은 사람은 그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구원자로 믿지 않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영원한 멸망에 던져지게 됩니다. 대통령, 재벌, 거지, 지식인, 종교인, 성인군자라고 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며 그 죄 값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종말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바로가 자신의 장자의 죽음을 대비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교만을 내려놓고 어리석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영원한 시간을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 자신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능력과 자격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타락했고, 전적으로 멸망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성공도, 행복도, 구원도 이룰 수 있다는 오해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착각해서, 해보려고 하지만 안 되어서 좌절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세상을 향해서 비관하고, 까칠해지고, 부정적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님을 찾고 믿음이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천국의 백성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땅에서는 천국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천국 백성으로 종말을 기다리며 살면 됩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천국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이 땅에서 천국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 두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죽어 천국에 가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서도 천국 백성답게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천국을 보장 받은 사람답게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누린다는 것은 천국의 능력과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지막 기회만 남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도 이 땅에서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의 기회는 잡았지만, 이 땅에서 행복할 기회와 능력있게 살아가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 땅에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회를 주셨는데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끝까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철없는 애들이 마치 치킨게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아주 위험하고 극단적인 게임이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젊은이의 우상이라고 하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이유없는 반항>이란 영화에서 악당과 치킨게임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벼랑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누가 더 벼랑 끝에서 멈추느냐, 아니면 서로 마주보고 차를 몰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다가 누가 끝까지 핸들을 돌리지 않느냐 하는 것이 치킨게임입니다. 핸들을 돌리는 사람은 겁쟁이 치킨이 된다고 해서 ‘치킨게임’이라고 불려집니다. 최근의 남북한이 마치 치킨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언론에서 했습니다.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포격하겠다는 엄포와 지뢰 도발을 사과하지 않으면 확성기 방송을 계속할 것이고, 포격을 가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도록 하겠다는 치킨게임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이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습니다.
마지막까지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끝까지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 망한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라가 전쟁이 일어나서 수 백 만 명이 죽음을 당하고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참혹함을 경험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관계, 자녀관계, 친구관계, 이웃관계도 끝까지 가지 말아야 합니다. 화난다고 극단적인 말 하지 마세요.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솔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 탓만 하지 말고 나의 잘못부터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보세요.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지 마세요. 다 망한 후에는 큰 후회만이 있습니다. 보지 못할 일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셨으니 이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