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홍해 광야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4절) 바로의 군대를 무찌르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바로의 군대는 특별 병거 육 백승과 애굽 군사들, 마병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군대가 눈 앞에 나타나자 심히 두려워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0~12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열 가지 재앙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른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원망, 불평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담대히 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3~14절) 이 얼마나 놀랍고 가슴 벅찬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더 이상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은 업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기에 당신도 가만히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인가요? 복지부동하는 것인가요?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 지식, 감정, 의지, 습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삶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충성하는 동시에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급한 성격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 때문에,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아집과 고집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아파서 다 죽어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단이나 사이비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 치료, 시술, 수술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허락하신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삶의 영역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충성하는 동시에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 운동, 일, 살림, 육아, 청소, 요리, 분리수거와 같이 해야 할 것은 성실히 하면 됩니다. 이런 것을 내가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걱정할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것에 고민하고 있다면 고민을 끝내십시오. 거짓말, 도둑질, 간음, 미움, 증오 등은 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하지 않으면 됩니다. 만약에 지금 이런 것들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 두십시오. 그러나 이사, 이직, 결혼 선택 등등 잘 모르겠는 것은 물어보면서 하십시오. 믿음의 선배나 가족들에게 꼭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면서 평안과 기쁨과 소망으로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성령께서는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분명히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기다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백 년간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물론 몇 차례 불신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25년을 가만히 서서 기다렸습니다. 특히 다윗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사울에게 쫓기기를 10여 년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차례 이상은 있었습니다. 최소한 그 정도면 사울을 죽이고 이스라엘 왕의 자리를 꿰차도 되지 않을까요?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다윗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놀랍게도 사울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도 기다렸습니다. 그러기를 7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윗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삼하5:2) 다윗은 무리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고, 욕심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20년 이상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2012년을 시작하며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 삼하5장 2절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이 말씀을 받는 순간에 '아 이제 하나님께서 개척하라시나보다'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경에 한 교회에서 청빙 서류를 넣어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성 교회로 부르시는가하는 마음에 고민하다가 서류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청빙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더 다급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부터 허락을 받고 교회 개척할 곳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계약 직전까지도 몇 차례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세상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그냥 지나가 버리는듯 했습니다. 그렇게 가을을 넘기는듯 하다가 서울광염교회가 하계동으로 이전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봉동에 교회를 설립해서 개척하는 것으로 당회에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3년 7월에 서울광염교회가 이전을 하면서 도봉동에 교회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몰랐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2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3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이는 숫자보다는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교회가 견고하고 탄탄해져야 하는 단계입니다. 좀 더 규모있게 잘 조직되어지고 만들어져야 하는 시기입니다. 성도들도 더욱 튼실하게 세워져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왜 안 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봉사도 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칩니다.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하고, 앞장도 서야 합니다. 예배당 청소도 하고, 주방 봉사도 하고, 교사도 성가대도 더 해야 합니다. 구제도 더욱 하고, 선교도 더욱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급하지 않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하려고 합니다. 서둘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탈도 없이 오히려 빠른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셨기에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요. 내가 한 것이 없는데요. 이제 와서 내가 뭘 하겠다고 하겠습니까? 나는 가만히 있어서 주님이 하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의 기다림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히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불안해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도록 나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와 판단과 습관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자신의 영광과 성공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세상의 가치관에 젖어서 헛되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달란트가 하나이면 하나에 충성하면 되고, 두 개이면 두 개에 충성하면 되고, 다섯 개이면 다섯 개에 충성하면 됩니다.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 그것에 맞게 충성하면 되고, 자영업을 하고 있으면 그것에 충성하면 되고,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학업에 충성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리니 가만히 있으시길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말씀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생각, 지식, 감정, 의지, 계획, 습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