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인가의 진가, 소중함, 진실, 은혜를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보아야 건강의 소중함을 압니다. 실패해보아야 얼마나 은혜를 누려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고를 당해보아야 안전 벨트와 안전 운행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실연을 당하거나 헤어져보아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엄마가 며칠 없어보아야 엄마의 소중함을 압니다. 굶어보아야 먹을 것의 소중함을 알고, 없어져 보아야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당해보아야 아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한 단면입니다. 그냥 알면 좋으련만, 망하지 않거나 아픔을 겪지 않고도 깨달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우매함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애굽 군대가 홍해에서 몰살을 당한 후에야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됩니다. 애굽의 바로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까지 해서 열 가지 재앙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쫓다가 또 큰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홍해를 열어주신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이 된 홍해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병거와 마병은 바닷물에 완전히 수장당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쫓다가 몰살을 당했던 것처럼, 인간은 당해보아야 아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이미 몰살을 당한 후에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아픔을 겪어보아야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에 <빛과소금>에 최형만(50세)이라는 잊혀졌던 개그맨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그는 20년 전에 "밑줄 쫙~ 랄랄랄라~"하면서 '랄랄라 선생님'으로 인기가 있었던 개그맨입니다. 최형만 씨가 인기 절정이었고 돈도 많이 벌었을 때에 한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합니다. 장래성이 있는 한 회사가 상장이 되면 몇 배의 차익이 생긴다는 말을 믿고 수 억 원을 투자했다가 그 지인과 주식투자 전문가라고 하던 사람이 잠적해버린 겁니다. 그 일 이후에 최형만 씨는 술독에 빠지게 되었고, 운전 중에 음주 단속에 걸려서 방송 출연도 중도 하차하게 됩니다. 결국 생계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그는 돈이 들어오면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물질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을까라고 하는 인터뷰 내용을 읽었습니다. 물론 최형만 씨는 그러한 어려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북세톻>이라는 책도 쓰고 강연을 다니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출14:18)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이고, 인정받아야겠다는 의지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셨고, 다스리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실 인정받아야 합니다. 엄마임을, 아빠임을, 남편임을, 선생님임을, 사장님임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당한 후에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진작에 그가 소중한 사람인줄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절실하고 필요합니다. 요즘은 아빠를 ‘투명인간’이라고 합니다. 엄마를 ‘가정부’, 남편을 ‘돈버는 기계’, 자녀를 ‘공부하는 기계’ 또는 ‘부모의 꿈을 이뤄주는 소유물’, 선생님, 사장님, 윗분들을 ‘나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꼰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아빠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우리 가정의 가장이며 결정권자’라고, 엄마는 ‘가정부’가 아니라 ‘우리 가정의 에너지’이며‘ 엄마의 헌신으로 가정이 든든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편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순종해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세워주어야 할 가정의 머리’라고, 자녀는 ‘공부하는 기계’나 ‘부모의 꿈을 이뤄주는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보물’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선생님, 사장님, 윗분들은 ‘나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꼰대’가 아니라 ‘나를 존재하도록 도와 준 고마운 분’ ‘나와 우리 가정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은인’이라고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소중한 것은 보통 때는 잘 모릅니다. 조금씩이라도 자주 관계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균열이 생기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없어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그것을 잃으면 삶의 기본조차 흔들려 버릴 수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겨주어야 합니다. 자주 이야기 해줍시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당신은 내게 소중합니다”라고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