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우리 동네에 있는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근처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좋은 강의를 하는데 어르신들이 복지관까지 오시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다고 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장소를 빌려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어르신들에게 살아 온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거나,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그리고 소소한 취미 활동을 가르치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빈 공간을 쓸 수 있느냐는 말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물론 사용료는 받지 않고요. 어떤 교회들은 주차공간을 공유하기도 하고, 성격은 다르지만 복지센터나 방과 후 활동 같은 아동시설을 운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역 사회를 위해서 작은 일이지만 우리 교회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는 지역 사회를 위해서 선한 일을 찾고 있습니다. 추석에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가서 선물도 나누고 삼겹살도 구워주고 즐겁게 놀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해서 생필품을 나누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을 위해서 생필품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섬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이곳저곳 순회를 하면서 다니는 나그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다니기도 했지만 일거리가 없을 때에는 생계나 주거가 마땅히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그네들을 어떤 대가나 지원도 받지 않고 자기 비용으로 섬기는 가이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이오는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일을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오 덕분에 어려움 없이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요한을 만나 가이오에 대해서 칭찬의 말을 했으며 요한은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1:3~4) 그 당시 순회 전도자들은 가이오와 같이 섬기는 사람들 도움으로 먼 거리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바울은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했지만, 한 편 여러 후원으로 선교 사역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이오의 섬김은 하나님 나라 선포에 매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환대와 섬김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가이오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1:2, 5) 가이오에게 진리 가운데 행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의 진리에 붙잡힌 바 되었을 때, 사랑의 섬김이 가능해지는 것을 봅니다. 가이오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계에 임하게 됩니다.
사역자들은 평생 하나님 나라를 섬기며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오늘날은 복음 전도자, 선교사, 목회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역자들을 격려하고 기도와 후원하는 것이 우리가 할 귀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교회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선교사와 여러 미자립 교회와 목회자를 도우면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복음 전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살림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위정자들과 권위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 일을 수행하는 정해진 때까지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니라 도와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와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딛3:1) 그리고 아버지들에게도 칭찬과 인정을 드리는 것이 그분들을 향한 섬김입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아버지를 위해서 칭찬 한 마디는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어머니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고하는 분들의 섬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고마움을 표하고 지치지 않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