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신 것을 그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냈다고 한다면 증거라도 있어야 하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요구에 응답하십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던져보라고 하십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니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세가 믿지 못하는 듯 하니까 손을 품에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품에 넣어 꺼내 보니 나병이 걸려 있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집어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품에 집어 넣고 꺼내 보니 나병이 사라졌습니다. 애굽의 권세를 다스리시고, 무서운 병인 나병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에 그들이 그래도 너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일강의 물을 조금 취하여다가 땅에 부으면 그 물이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정도되면 '하나님 내가 믿겠습니다. 이제 가겠습니다. 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이야기하고, 바로에게도 말하겠습니다' 이렇게 반응하면 좋을텐데, 모세는 자신은 본래 말을 못하며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라서 못한다고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함께 할 것이니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하면서 재차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십니다. “너에게 아론이 있지 않느냐?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어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입에 함께 하셔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시고 행할 일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이후의 삶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왕을 대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할 말과 행동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할 말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셨으니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 이런 대접을 받은 모세가 부러우십니까? 많이 부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부러워할 것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니다. 목사만, 장로만, 선교사만,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어떻게 가르쳐 주십니까? “나는 하나님께 들은 적 없는데요? 나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적이 없는데요?”라고 의아해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부부관계는 어떻게 하라고, 자녀는 어떻게 양육하라고,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라고,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하라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누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하라고, 누가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면 어떻게 하라고, 내 것을 빼앗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당신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남편에게는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의 기도가 막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예수님께 순종하듯이 순종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부모된 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에는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 하듯이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화가 나도록 하는 사람에게는 더 해주라고 하시고 오래 참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 축복해주고 기도해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을 안 하면서 응답받거나, 잘 되거나, 성공하거나,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죄악의 본성에서 나온 탐욕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것을 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잘 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고,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선은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 안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많이들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되던가요? 쉽지 않습니다. 화가 날 때는 성경이 생각이 안 납니다. 그 사람이 미울 때는 성경은커녕 그 사람 미운 것만 생각납니다. 그 다음이 진짜 중요합니다. 성경대로 살아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신앙은 그래서 습관이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믿음은 관념이나, 철학이나, 감정이나, 느낌보다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은 그래서 습관입니다. 마치 운동을 하면 매집이 길러지고 근육도 생기고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다보면 그렇게 변하게 됩니다. 기분 나쁘다고 싸워보아야 마음만 불편합니다. 예를 들어서 볼 일이 있어서 모르는 아파트 주차장에 놓고 가려니 누가 붙잡습니다.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이 “당신 뭐냐?”고 묻습니다. “5분만 주차할께요”해도 소용없습니다. “빨리 차 빼요!”합니다. 그럼 다시 사정합니다. “급해서 그러는데 금방 볼 일만 보고 올께요” 그래도 돌아오는 말은 "필요없어요. 빨리 나가요!" 그럼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지릅니다. “당신 그렇게 살면 안돼!!” 심지어 “당신, 저주 받을거야”하는 말도 턱 밑까지 찹니다. 저주의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씩씩거리면서 나옵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습니다. 그 사람이 밉기도 하고, 소리지르고 화를 낸 자기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으로 말씀하셨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가르쳐 주십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행하셨고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영과 함께 행하시고 싶으시죠?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인격적인 분이므로 강제로나 억지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비활성화 상태로 머물고 계십니다. 우리가 클릭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권위자, 신앙의 선배, 가족들에게 물어보면 좋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청년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어했습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았을 겁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두 가지를 다 하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볼 때에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개인적인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 더 시간을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고 느껴졌습니다. 두 가지를 다 하려면 돈도 많이 드는 것입니다. 몇 일 고집을 부리다가 그 청년은 엄마의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청년은 엄마의 권면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직을 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디로 해야 하는지, 어느 학교와 학과를 가야 하는지, 거기를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등등. 그 때가 성령을 클릭해야 할 때입니다. 성령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은 나와 함께 있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언제나 활성화 하실 수 있으십니다. 활성화 할 수 있도록 클릭하세요.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무엇을 할까요?” 이것이 클릭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주저하는 모세에게, 확신이 없어서 망설이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많은 말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습관을 들이십시오. 말씀에 분명하게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성령 하나님을 클릭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영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르쳐 주십니다. 기쁘고 능력 있는, 즐겁고 승리하는, 보람되고 흥분되는 그래서 행복한 날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