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된 딸은 아빠의 품으로 뛰어듭니다. 아빠가 자기를 잡아주고 안아줄 것을 믿기 때문에 전혀 걱정도 하지 않고 침대 위에서 무조건 달려드는 겁니다. 옆에 있는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위험하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딸에게 주의를 줍니다. 물론 아빠인 나도 딸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다해서 딸을 붙잡습니다. 딸에게는 엄마와 아빠보다도 더 큰 믿음이 있습니다. 아빠가 자신을 확실하게 붙잡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 아이를 평안하게 만듭니다. 인생을 살면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을 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걱정과 염려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대와 평안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딸처럼 아빠를 믿는 믿음이 내게도 하나님을 향해서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야곱은 걱정과 염려를 하면서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형에게 가야 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속임수 때문에 형의 복수가 두려워서 20년 이상을 집을 떠나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함께 하시고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야곱이 누워있는 그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을 안전하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으며, 그 약속을 이룰 때까지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잘 한 것 하나 없는데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런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야곱은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며, 사람들과도 씨름하면서 피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0년이 지나서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가게 되었고,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을 때에 그는 여전히 형에게 복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온갖 선물을 준비했으며, 하나님의 천사와도 처절한 씨름을 했습니다. 드디어 에서를 만나는 그 날, 야곱은 최대한의 낮은 자세로 예의를 갖추면서 에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서는 야곱을 환대하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에서는 달려와서 야곱을 안고, 입 맞추었으며 서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쌓여 있었던 앙금과 미움이 가라앉고 형제의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염려하고, 두려워했건만 너무나도 싱거울 정도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기쁘고 평안했으면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듯 합니다”라고 했겠습니까? 형제의 만남 후에, 에서는 다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일로 돌아갑니다. 각자의 소유가 많아서 함께 거할 수 없었으며 에서는 어차피 가나안땅이 아닌 눈에 좋아 보이는 세일이란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를 보면서 하는 얘기일 수 있지만, 야곱이 고향땅에서 살았어도 풍성하게 살다가 에서는 세일로 가서 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야곱이 미리 알았다면 과연 축복받겠다고 형과 아버지를 속였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곱은 힘겹게도 속고, 속이고, 씨름하면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야곱은 스스로 험악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왔습니다.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인생을 크게 좌우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젊은 나이에, 더욱 어린 나이에 철이 들면 좋습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평안히 가나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세겜이란 곳에 이르러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명명합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 받은 새로운 이름입니다. 즉 야곱 자신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잘 안 되는 것 같고, 눈에 안 보일 때는 고백이 안 되다가도, 눈에 보이고, 일이 되어 지면 평안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는 풍랑과 파도에 빠져들면 정신 차리기가 힘들어집니다. 미리, 그전부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지내야 혹시라도 어려운 일이 생겨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야곱도 거의 6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같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이사야43:1~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1~39)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진작 그 고백을 하면서 인생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야곱이 당신이 아니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