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도 없는 사람이 의사라고 속여서 환자를 수술한다거나, 자격도 없는 사람이 어떤 사람의 변호를 맡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매우 비상식적이며 위험한 상황인 것이 분명합니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의사라고 속이면서 치료비 얼마를 요구하는데, 환자는 너무 과하다고 하면서 저렴하게 해달라고 흥정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무자격자에게 당하는 환자가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 수술해주겠다고 하면서 수술비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성의 사람들에게 할례를 요구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성에 장막을 지어 서 살게 되었고, 야곱의 딸 디나는 세겜성의 화려하고 멋진 여자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추장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고 욕을 보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말하러 오게 됩니다.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사죄도 없이 오히려 주장하는 자세로 디나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디나를 보내지도 않은 채 포로로 잡아두고는 무례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지참금과 예물을 많이 주겠으며 서로 통혼하자고 합니다. 돈과 힘과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가의 거만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짓밟힌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과 통혼할 수 없지만 할례를 행하면 통혼하겠으며,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될 수도 있다는 속임수를 씁니다. 그리고 세겜족속을 진멸할 전략을 꾸밉니다. 할례는 남자의 양피를 베는 것입니다. 성인 남자들이 양피를 베게 되면 일주일은 지나야 아픈 것이 아물기 시작합니다. 몇 일 동안은 꼼짝을 못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얻고자 하는 욕심으로 자기 족속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요청했고,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3일 후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성을 급습하여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고 디나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리고 성에 있는 모든 재물과 가축들을 다 빼앗고 아이들과 여자들을 사로잡고 노략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족속을 속여서 받게 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징표입니다. 창세기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와 그의 집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과 그 족속의 사람에게만 행하는 예식이 할례이며, 이방인의 경우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할 때에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신명기에서는 암몬, 모압, 그리고 아말렉 족속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은 다 진멸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의 아들들이 이방 사람들에게 할례 하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며, 세겜 족속들이 할례 하겠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할례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겜 족속처럼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행하는 할례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행하고 통혼하자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며 인정하시겠는가라는 말입니다. 마치 자격도 없는 사람이 아무 사람에게나 수술해주고, 변호해주고, 자격증을 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생각, 방법, 욕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하면 되겠지 하면서 선행, 철학, 돈, 힘, 수련으로 구원을 얻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보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 “내가 죽기 전에는 교회 갈거야”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할례의 형식, 방법,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 재가, 인정하심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형식, 방법도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구원을 받고 안 받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는 우리의 형식, 방법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받아주심, 수용해주심, 인정해주심이 핵심입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즉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배하는 주체인듯 하지만 “내가 해야지” “내가 할 수 있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 예배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