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은 777을 이길 수 없습니다.

by 김세열 posted May 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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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나온 짐승
계시록13장 11- 끝

여러분들중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괴물이나 짐승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본 킹콩
에서부터 죠스나 오늘날 주라기 공원의 공룡은 참 스릴 있고 긴장감 있으면서 참 재미있습니다. 주라기 공원에는
티라노 사우르스나 랩터라는 공룡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긴장감만 가지고 있지만 실
제로 그것이 현실이라면 그 공포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만일 이 예배당에 광견병 걸린 도사견
한 마리가 뛰어들어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니 사실 팔 뚝만한 검은털
이 북실북실한 쥐 한 마리가 장의자 위로 지나 다닌다고만 해도 아마 여기 저기서 악 비명을 지르며 모두 뛰고 소
리지르고 할 것입니다.

제가 중고등부지도 할 때 배운 쥐잡기 게임을 교역자들에게 가르치고 한 적이 있어서 쥐를 잘 잡는다는 별칭을
받았는데 사실 바퀴벌레가 더 끔찍합니다.  특히 엄지손가락 만한게 검은 색으로 긴 더듬이를 앞으로 내세우며 이
리 저리 다니는 바퀴벌레, 이 5층 교육관에서 가끔 보았습니다. 바퀴벌레가 저를 공격하지 않으니 그냥 슬쩍 못본체
하고 제가 피하면 그 뿐인데,  마지못해서 잡아야 될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바퀴벌레의 존재가 많은 사람에게 들켰
버렸고 내가 유일한 남자인 경우입니다. 저는 마지못해 커다란 신문지 몽둥이로 바퀴벌레를 때려잡을 때 그냥 때려
잡고 버리면 될 것을 마치 야구선수가 야구방망이 휘들 듯, 도끼로 나무찍듯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칩니다. 그리고는
꼭 할 필요없는 상상을 합니다. 아마 이 정면 바퀴벌레의 각질이 뽀개지면서 그 속의 부드러운 몸뚱아리가 산산히
터지고 속에 부드러운 액체가 사방에 튀어 나오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면서  더 몸서리를 칩니다. 

지금 요한은 아주 끔직한 환상가운데 빠져있습니다. 마치 무서운 꿈에 가위가 눌린 것처럼 말입니다. ,  때로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에 몸을 떨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감동하며 벅찬 마음을 가지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요한의 환상은 역시 공포스런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12장에는 7머리 열뿔 난 붉은 용으로 상징된 사단이 있었습니다.  13장 초반에는 둘째로 동일하게 일곱머리 열
뿔이지만 표범과 곰과 사자와 용의 복합적인 괴물의 모습인 바다짐승이 있었습니다. 그 짐승은 용에게 받은 권세로
하나님과 그 백성을 훼방하는 짐승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징을 볼 때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사단의 권세를 받은 적
그리스도적인 거대 세력, 국가나 종교집단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큰 세력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무진 애를 쓰는 특징이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성
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신비한 존재로 있음을 본 따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과 바다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이 3두 체제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단 역시 피조물이므로 결코 하나님처럼 될 수는 없습
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근본입니다. .
피조물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죄의 근본입니다. 어리석은 일이요 교만죄입니다. 바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 하나님처
럼 되고자 하는 교만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하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가 어떤 죄를 짓지 않더라
도 확실하게 교만죄를 짓고 존재입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배은망덕 교만죄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3번째의 짐승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둘째 짐승까지 본 요한은 이제 세
번째는 어떤 무서운 짐승이 나타나는가 해서 잔뜩 긴장하고 두려워하면서 그 환상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을 것입
니다.
그런데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본 요한은 일단 그 짐승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괴물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매에~~ 메에 ~~ 우는 아주 연약한 새끼 양처럼 두 뿔이 있는 어린 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더 큰 공포가 옵니다. 그 양의 목소리는 용의 목소리였습니다. 용
의 음성이며 용의 사상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용처럼 말하더라"
모습은 양인데 목소리는 용처럼 말하였습니다. 바로 둘째 짐승의 본질은 용이나 그 모습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
인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난 존재입니다. 그는 위장된 모습으로 거짓의 아비인 용의 말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속이는 존재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세상권력으로서 교회를 외부에서 핍박하는 존재라면 땅에서 나온 짐승은 거짓교훈으로
교회를 내적으로 부패 타락시키는 자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단의 말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단은 자신을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진리라고 속입니다. 박태선씨는 자기가 동방의 두 감람나무라고 미혹했습니다.

한국기독교협의회 총무 백도웅 목사는 불기 2546년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에게 축
하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의 내용은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설파했던 부처님
의 가르침이 우리 종교인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는 것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축하할 날이 아니라 슬퍼해야
할 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미혹하고 있는 것이 그 종교 아닙니까? 그런데 기독교의 총무
가 마치 부처의 가르침을 존중한다면 불교인들은 그곳에서도 진리가 있으며 모든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
주의를 진리로 받지 않겠습니까? 내가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인 주님의 말씀을 화합과 일치라는 명목아래 진리를
훼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일치는 순결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죄와 일치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벨리얄이 화합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교회를 부패시키는 용의 말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박옥수목사의 구원파 집회가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
과 비판을 적어보았습니다.
특히 구원파의 주장 -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소산들을 행
해야 하는가 ?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비판-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은총이므로 구원 얻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
원을 받은 사람에게 교회의 제도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구원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질서를 지켜야 하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교회의 제도와 법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
☞ 구원파의 주장 -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
킬 필요가 없다.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
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 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는다.('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
고'라는 부분 때문에 외우지 않는데, 이 부분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외우기도 한다.) 사
죄를 간구하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논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회개하는 고통이 없고 구원에 대
한 확신을 주기에 매력적이다. 영적 투쟁을 하려고 하는데 잘 하지 못할 때 이 말을 듣게 되면 그 논리와 확신에 넘
어가기 쉽다.
비판-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히6:1-8)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 구원파의 주장 - 권신찬 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이요한 씨가 「복음을 깨닫고」, 박옥수 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은 다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
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
가 확실하다.
비판-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믿음에서 오는 것으로 깨달음 자체
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처럼 주장하여 영지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깨닫지 못해도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확
신이 없다고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지만 잘못된 사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같은 권세를 행합니다. 이 권세는 모두 사단에게서 나온 권세입니
다. 땅에서 나온 짐승의 주된 사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사명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
게 경배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바다에서 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현실적인 예를 들면 종교지도자가 일어나서 세상세력에게 아부하여 황제숭배나 우상숭배를 권유하는 것과 같습
니다. 즉 선지자로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짓말로 적그리스도적인 세상세력의 우상숭배를 찬미하고 유도
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는 적그스도세력인 모압왕 발락을 위해 거짓 예언을 하는 발람 선지자가
땅에서 나온 짐승에 비유될 수 잇습니다. 또한 로마황제를 위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유다의 종교지도자들의 모
습이 땅에서 나온 짐승이기도 합니다. 우상숭배의 악한 왕인 아합왕과 그를 대언한 거짓선지자 시드기야처럼 땅에
서 나온 짐승은 어린 양의모습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하고 거짓예언을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은 우리에게 언제나 사자 이빨과 곰의 발톱과 표범처럼 날세고 강력한 괴물로 다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
로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핍박을 하는 존재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주 연약한 어린양처럼, 우리들의 동정심을 불
러 일으키듯 가련한 모습으로도 옵니다. 예수님의 형상처럼 옵니다. 달콤한 솜사탕을 손에 쥐고 웃는 얼굴로 나타나
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입을 열면 용처럼 말합니다. 용의 사상을 말합니다. 
식충식물인 끈끈이 주걱은 곤충들에게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있습니다. 곤충들이 그 향기를 좋아해서
다가서면 그만 곤충을 덥석, 잡아 삼켜 버립니다. 땅에서 온 짐승은 마치 끈끈이주걱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땅에
서 온 짐승의 외모만 보고 따라간다면 사단의 술수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떤분들은  "설마 내가 그 술수에 넘어갈까?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교회다닌지 10년
이 넘었는데, 이단에 속아 넘어가려고" 내심 자신만만한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놀라게 하고 긴장시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거짓 선지자인 땅의 짐승이 말만이 아닌 것입니
다. 거짓이라도 참인 것처럼 큰 이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라면 당연히 말로만 그럴듯하고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서는 안돼는 것이어야 되는데 말입니다.
13절을 보십시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
을 만들라"
거짓 선지자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은 하늘의 인정
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능력을 받은 것을 나타냅니다.  마치 엘리야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불이 내리
는 이적을 얻은 것처럼 거짓선지자도 그와 비슷한 이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적의 출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이니  사단에게서 얻은 이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도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을 행합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
들에게 임하리니" 살후 2"9,10
그럼 이적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기적을 행합니까? 그 이유는 백성을 미혹하여 우상
숭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우상을 만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상에게
는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이거나 매매를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다짐승이 우상에게 생기를 주는 것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
게 생령이 되게 하는 창조의 사역이 아닙니다. 오직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처
럼 창조주를 흉내내는 사단의 간교한 술수와 기만인 것입니다. 그들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생명공학의 발달로 유전자 복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유전세포를 가지고 또 하나의 복제짐승들을 만
들어 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의 창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전자복제의 세포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세포입니다.
그 안에 이미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복제란 죽은 것을 살리거나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야 말
로 복제이지 생명의 창조는 아닙니다. 여러분 피카소의 그림과 똑같은 것이 우리집 달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카소의 그림이지만 창조물은 아니고 복제입니다. 창조물과 복제물의 가치는 하늘 땅처럼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뛰어난 복제품이 있어서 원본과 전혀 손색없이 그려놓았다할지라도 그 가치는 비교할 수 없듯이 창조의 능력과 복
제의 능력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정말 사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창조일 것이지만 모기 하나에게도 생명
을 다시 넣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도 마치 기적을 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기만입니다. 술
수입니다.

어떤 분들은 유전자 복제를 통해 죽어가는 사람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죽은 아들을 다시 만들어 내거나 동성연
애자를 위해 자녀를 만들어 주거나, 또는 장기이식을 위해 필요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거역하는 교만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이 무엇인지 소개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느 마술가가 초능력으로 콩을 싹티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먹에 쥔 콩이 에너지를 공급하니 몇 분내
에 크게 자라났고 싹을 피웠던가 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마치 창조주의 능력처럼 놀랍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그것
이 콩을 순간적으로 바꿔 놓은 눈속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눈속임이 아니라 실제 그콩을 순간적으
로 자라게 했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콩안에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
가 죽어 마른 콩을 자라게 할 수 있다면 창조의 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기 체조나 마인드 콘트롤 명상등이 정신치료나 심
리치료에 효과가 있고,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들었을 것입니다. 수락산에 명상의 숲에
가면 기체조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단전호흡을 하면 뭐 좋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으로 그런 건
강의 효과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기적적으로 보이는 치료의
역사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상적 배경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UFO 관련단체로서 84개국에 55,000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는 라엘리안무브먼트의 잘 알려
진 정신적 지도자 라엘은 3년 전 세계최초로 인간복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클로나이드를 설립했다. 세계최초
의 인간복제회사인 클로나이드를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클로나이드는 라엘리안무브먼트의 리더인 라엘에 의
해 1997년 2월에 설립되었습니다. 라엘리안무브먼트는 종교적인 국제단체로 지구 상의 생명체가 엘로힘으로 불리는
외계인류에 의해 DNA의 유전자조작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 외계인류의 이름인 엘로
힘은 히브리어 성서에서도 발견되며 훗날 <하나님(God)>이라는 단어로 오역되었고, 예수도 엘로힘의 발전된 복제
기술로 부활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종교들이 오직 신비로운 사후의 낙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약속했던 영
원한 생명, 그것은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이제 과학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뛰어난 상상
력을 통해 라엘은 인류의 놀라운 미래를 잠시 보여주고, 수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
꾸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갈지 설명해 준다.
그 사상적 배경은 뉴에이지 사상처럼 인간의 초능력으로 인하여 하나님 없이 살수 있다는 사상을 깔고 있습니
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하면 마치 명상이나 기체조나 단련으로 초능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악한 사상이 배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에서 어떤 효과
가 있고 건강해졌다고 해서 무슨 병이 치료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선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린
양의 모습으로 와서 결국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사단의 역사가 많은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제재를 가합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너는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손과 힘을 이마는 인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단은 자신의 추
종자들에게 비슷한 표식을 하게 다닙니다. 자신의 힘과 자신의 사상이 완전히 사단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뜻입니다. 즉 이렇게 사단에 속하지 않은 자는 경제적 제재와 박해를 받게 됨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박해
를 받아 산업을 빼앗기고 카타콤으로 숨어든 성도들이 그랬고 역사상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로 인해 제재와 박
해를 받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사실만으로 전 삶의 영역에 각
종 제제와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 표는 짐승의 표요 666이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있는 자는 그 수를 세어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오멘
이라는 영화를 보니 사단의 아들로 상징된 어린 아이 정수리에 666이란 숫자가 세어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666의 의
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역사상 해석의 난제가 되었습니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숫자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이름도 숫자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게마트리아라는 방법입니다.
이레니우스와 초대 교부들은 666을 라틴제국이라고 봅니다. 네로, 칼리굴라, 도미티안 ,시저들 전체, 로마제국,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황제들의 첫 글자를 합해서 666을 만들었는데 사실 몇 명의 황제
는 빼버렸습니다. 또 누구는 계시록의 바벨론이 나오는데 바베론의 창시자 구스의 아들 니므로트를 히브리어로 하
니 666이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에 이름에 ti를 붙이면 666이라고 하고 네로 황제를 라틴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한
다음에 약간 틀리게 하면 666이 된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는 히틀러와 로마카톨릭 교황도 지목되기도 합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멧, 또는 루터와 칼빈
의 이름도 거론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모든 숫자를 이제것 상징으로 해석해 왔는데 요한이 이 숫자만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도록 의도하였다
는 것이 옳을까요? 예를 들면 7이란 숫자와 12이란 숫자 144000이란 숫자 3년 반이나 1260일이나 42달 이 모두는
실제적인 숫자가 아니라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666은 실제적인 숫자로 볼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서 6을 상징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게되었습니다.
성경에서 6이란 숫자는 7이 완성과 거룩을 의미하는데 반해 그에 가장 근접했으면서도 그 역시 불완전한 미완
성과 부정을 나타내며 완전에 도전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666은 사단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방해서 결국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나타내기위해 666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도전한다 할지라도 777에 비해 항시 부족하므로 끝내 하나님의 멸망을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666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도전하며 신처럼 추앙받으려는 존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시대의 황
제들처럼 일제 시대의 일본천황처럼, 북한의 김일성부자처럼, 통일교의 문선명처럼, 자신을 신처럼 내세우며 숭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자가 바로 666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력에 속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매매를 금지당하기도 하고 회사나 직장에서 쫓겨나야 될 수 있습
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때로는 외톨이로 살다가 죽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런 상황
에도 인내하고 믿음을 지켜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에 굴복당하는 것은 지혜없고 총명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수를 세어보면 그것은 하나님이 수가 아니라 짐승의 수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66을 세어본다는 것은 그 세력이 하나님의 세력이냐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냐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종교적으로 때로는 문화적으로 때로는 정치적인 세력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세
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것을 안 후에는 그것의 핍박과 유혹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결국은 멸망당할 세력임을 또
한 알아야 합니다. 666이 777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숫자를 아는 사람이면 다 알고 포커케임을 해본사람은 더
잘 아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듯이 사단이 아무리 강하고 교묘해서 하나님을 모방하고 흉내내고 도전
한다고 해도 결코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편에 있으면 혹 지금 당장 편하게 살수 있고 즐기며 살수 있을 지 모릅니다. 사단과 바다짐승과 땅짐승의 3
두체제로 인한 핍박과 유혹을 당장은 모면하여 안락하고 평안을 누리는 듯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사
단과 함게 심판당하고 함께 멸망으로 마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 있으면 매매금지와 죽음처럼 고난과 핍박과
가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 결국은 승리와 영광입
니다. 이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666에 속하시겠습니까? 지혜와 총명을 발휘하여
666이 아닌 영원한 완전의 하나님인 777에 속하시길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사람들이므로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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