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으려고 모의하여서 삼손의 여자를 매수합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어디에서 그 힘이 나오는지를 알려달라고 조르며 재촉합니다.
삼손은 세 번이나 속임수로 일관했지만 거짓 사랑의 유혹에 심히 번뇌하게 됩니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삿16:16)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는 여자의 유혹에 삼손은 번뇌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삼손의 번뇌는 백성과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라 정욕과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당신은 무엇 때문에 번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입니까, 정욕을 위해서 입니까?
결국 삼손은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17절)
삼손은 하나님과의 약속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여자와 정욕 때문에 하나님과의 비밀스런 약속을 누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은 삼손을 떠나시게 됩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19~20절)
하나님과의 비밀스런 약속을 저버리고 무시하는 삼손을 하나님의 영은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십니다.
하나님의 사명과 역사에 동역할 수 있는 영광을 옮기십니다.
삼손은 처참하게 눈이 빠지고 놋줄로 묶여서 끌려가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았다고 다곤 신에게 찬송하며 즐거워합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연회장에서 재주를 부리는 놀잇감이 되고 맙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간구하며 호소합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28절)
그러나 여전히 삼손의 억울함은 무엇입니까?
민족의 아픔과 슬픔도 아니요, 백성들의 고통과 괴로움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이 그의 호소였습니다.
여전히 지극히 개인적인 분노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삼손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29~30절)
삼손이 살았을 때에 죽인 숫자보다 죽으면서 죽인 숫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과 지혜를 개인적인 정욕에 써버리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욕심과 분노에 사로잡힌 삼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보호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과 지혜와 은사를 어디에 쓰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그의 뜻과 섬김과 봉사를 위해서 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정욕과 자랑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