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대접의 재앙이 시작된다.

by 김세열 posted Jun 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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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점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의학의 발달로 점점 잘살고 장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
다. 그러나 이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이지 신본주의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에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마치게 되어있습니다. 본문의 일곱 대접의 재앙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징이라고 해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과장
되어 겁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을지라도 인류에게 반드시 다가
올 미래의 일입니다. 그 미래가 내일일 수도 있고, 아니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일
에 우리는 무관심할 수도 없으며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2000년전의 밧모섬의 요한의 환상으로 들어가보시
겠습니다.

요한은 성전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을 땅에 쏟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났다는 것은 그 명령이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의
미입니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며 따라서 선한 것입니다.  이제 그
일곱 대접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대접을 봅시다. 2절
첫째 천사가 그 대접을 땅에 쏟았습니다. 그랬더니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
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났습니다.
악하고 독한 헌데는 아주 고통스러운 악성 종기같은 피부질환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
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진물이 나고 상처에 고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잠도 잘 수 없
고 옷도 제대로 입을 수도 없습니다. 앉거나 눕기도 힘듭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정말 문자적으로 종말에는 악성피부질환이 많아질까요?
그런데 그 재앙의 대상이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
다. 여기에 소망과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13장에 기록되기를 땅에 나온 짐승이 우상을 숭배하
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만 매매하고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섭고 가혹한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데 일곱 대접의 첫째 재앙에는 역전되었습니다. 대상이 불신자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물론 불
신자들과 함께 살때에 그리스도인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곱 대접의
주된 대상이 바로 불신자라는 것만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 대접의 재앙과 셋째 대접의 재앙이 나오는데 그 결과가 비슷합니다. 둘째대접
은 바다가 피같이 되어 모든 생물이 죽는 재앙이고 셋째대접은 강과 물 근원이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들은 이미 나팔재앙에도 있었는데 나팔재앙의 영향으로 삼분지 일이 죽
는 반면 이 대접의 재앙에는 모든 생물이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즉 범위가 더 확대되고 모든
대상에 그 심판이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물에 임하니 바닷물도 강과 샘이 다 피가 되어 생명이 살 수 없는 물이
되었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현상이 되는가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분명히 알 수는 없습
니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잇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의 생각으로는 환경재난으로 물이 오염되고 썩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
금속과 폐수로 인해 물이 죽고 바다에 매장한 핵폐기물이 누출되는 재난을 예고할 수도 있습
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재난을 당할 때 죄인이 된 인간들은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하나
님은 인간의 작은 죄에 크게 징벌하시는 무정하며 불의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은 물을 담당한 천사의 찬양에서 반대되어집니다. 5절 6절을 봅시다.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롭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
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나이다."
7절"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
시는 것이 참되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천사의 고백과 제단의 메시지의 공통되고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심
판은 의롭고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죄없는 자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
도 아니요 죄의 정도에 지나치게 벌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월드컵축구를 보니 반칙을
한사람과 당한 사람을 잘못 판정하는 일이 있습니다. 불의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반칙에 대
하여 경고를 준다면 합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피의 값은 피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특징은 의롭고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않고 철저히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성기룡이라고 하는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주 큰 키에 공부도 잘
하고 아주 말발이 좋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친구여서 쿵짝이 잘 맞았던 친구입니다. 특별히 노
래를 잘 불렀고 유창하게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불러서 사람의 기를 죽여놓기도 하던 친구였
습니다. 수학여행때 교내 가요경연대회에 나가서 시원시원하게 부르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서울역 뒤편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오곤 했는데 가끔
신앙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 친구의 지론은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불의와 악과 악당들
이 있는데 하나님이 과연 계시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체로 궁색하였고 하나님의 뜻
이라고 답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는 억지를 부린다고 반론했습니다.
그런 논쟁후엔 저는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제가 답답했고 스스로 약올라서 왜 하나님이 정
말 이 친구에게 나타나서 호통한번 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
와 만나는 동한 한번도 하나님은 그런 종류의 호통을 치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사람들중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처럼 악인들이 잘돼고 선한 사람들이 고통
당하게 놔두는가?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합니다. 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당하게
하는 히틀러나 김일성이나 그 외에 수많은 악인들이 사는 동안 호의 호식하고 득세하며 장수
하고 반면에 왜 착한 사람들이 암으로, 사고로 죽는 일이 있단 말인가? 하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중에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신 세상사람들에게 차별대우와 미움을 받
은 적이 있습니까? 군대에서 상관들에게 직장에서 상사분들에게, 또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등등 힘있는 사람 힘있는 기관에게서 압력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지금도 공산치하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지하에서 숨어 예배하면서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하메트에서 개종한 극소
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내걸고 신앙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주 뼈대깊은 유
교나 불교의 집안에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부모와 친척의 종교적인 갈등과 제사문제
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 때에 믿음을 지켜내는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억울한 박해를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왜 복수해 주지 않는지 알수 없고 갈등합니다.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참 하나님이시라면 당장 그 얼굴을 비쳐주지 않
나하는 탄식을 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처럼 거짓 신인 바알신을 숭배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저들앞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같은 능력이 임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며 그리스도인인 내가 옳았다는 것을 알리고
저들의 기고만장한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를 원했던 적이 수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당한 모든 일과 억울한 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
을 의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
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모든 죄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죄인과 악인
들이 이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노없이 이 세상
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예비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
사의 마지막에서는 합당하고 의롭게 죄인과 의인을 심판하십니다.

혹 여러분들중에 불신자로부터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그 날에 불신자
들에게 진노의 대접을 쏟아부으며 그 분들에게 진노의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
다. 따라서 여러분은 결코 지금 세상사람에게서 당하는 억울함과 핍박에 탄식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약오르거나 분내지도 마십시오. 일곱 대접의 심판이 남아있음을 기억하십시다. 

네 번째 대접의 재앙은 해가 불로 사람을 태우는 재앙입니다.
태양이 뜨거워지고 그 열에 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됨을 말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자외선 피해가 그 재앙이라고 봅니다. 지구상에는 태양의 자외
선을 차단하는 오존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오존층이 환경오염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지금
알래스카만한 크기로 구멍이 뚤려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남극과 북극을 중심으로 이 파괴가
나타났지만 점차 지구 중심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독일
영국 카나다 지방까지 내려왔다고 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자외선을 직접 받는 사람들은 피
부노화가 빨라지고 각종 피부암과 피부질환이 여러 배로 증가하고,  50대 이후에는 눈에 백내
장을 생기게 하며, 면역기능을 약화시켜 전염병에 걸리기 쉽게 한다고 합니다. 또 곡물에게는
광합성을 억제하고 생산이 감소되게 하고 바다에는 플랑크톤을 약화시켜 ,생태계를 파괴한다
고 합니다
덴마크의 환경처 장관이 텔레비젼에 나왔는데 "여러분들 이제부터는 모자를 쓰고 다니십
시오. 선스크린을 하십시오"라고 경고하였답니다.
칠레의 제일 남쪽에 있는 푼타아레나스 시에서는 부모님들이 낮 10시부터는 오후 3시까지
는 아이들이 밖에 나다니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구가 점점 사막
이 많아지고 지구의 평균 온도가 매년 높아지는 온난화 현상이 발생하여 이상고온현상이 도
니노현상처럼 엘리뇨와 라니뇨의 이상 현상으로 인해 해일과 홍수등이 빈번해지는데 이것이
해의 재앙의 결과인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정복하고 다스릴 대상입니다. 태양은 모든 인간에게 없어
서는 안될 일반은총의 피조물입니다.  해가 없다면 지구의 모든 생물은 바로 죽을 것이며 빛
과 열이 없으므로 어두움 얼음천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은총의 피조물도 하나님이 진
노의 도구로 사용하시면 오히려 인간을 해치는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대접의 재앙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졌으며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심히 아
프게 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고통 때문에 자기 혀를 깨물정도로 고통을 당하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4대접과 5대접에 우리의 눈을 다시 뜨이도록 이상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대접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 재앙의 권세가 하나님으로 온다는 것을 안다는 것
입니다. "9절: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
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1절"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그런데 9절 11절을 보면 그 사람들의 반응은 참 의외입니다.
불신 사람들은 진노를 받아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도
알면서 하나님께로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훼방하는데 이것은 하나님
의 이름을 모독하고 그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에 하나님은 진노를 내리시지만 그 진노에는 회개를 원하시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불신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자리로 돌아
오면 언제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방법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실 때에 첫 번째에 일곱 대접의 재앙을 내리시지 않고 일곱인 다음에 일곱나
팔의 재앙을 거친 것은 회개의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지금이라도 일곱 대접의
5번째 재앙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돌아오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들은 회개치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빠가 귀여운 어린 아이의 투정을 사랑으로 받아줍니다. 떼를 쓰고 울어도 오냐 오
냐 하고 웃어줍니다. 그리고 갖은 응석을 다 받아줍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버릇이 없어 아빠
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습니다. 아빠가 화가 조금 나서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그래도 계
속 아빠를 머리잡고 어깨에 올라탑니다. 아빠가 경고합니다. 계속 그러면 너 매맞는다.
그래도 아이는 아빠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붙잡아 볼기를 한 대 때
렸습니다. 이제라도 아이는 아빠가 무서운 줄 알고 "아빠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네"잘못
을 빌면 아빠는 다시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에게 맛있는 과자 사먹을 돈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아이는 씩씩거리며 아빠한테 대듭니다. 왜 나를 때렸어! 그리고 아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댑니다. 아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몽둥이를 가져옵니다. 그리
고 말합니다. 너 아빠한테 계속 버릇없이 까불면 이 몽둥이로 맞을 줄 알아! 그러자 아이는
아빠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감히 주먹을 휘두르면서 달려듭니다. 이 아이는 몽둥이로 두둘겨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빠에게 더 대듭니다. 다리 몽둥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실컷 맞아야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아이입니까? 아빠랑 싸워서 이길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때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합니다. 뻔히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이
온것도 알면서도 하나님을 욕하고 훼방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죽일테면 죽여라하는 것입니
다. 이런 마음이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양심이 화인맞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최후의 심판 또한 집행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럼 우리는 원래 양심이 화인맞지 않고 부드러운 자였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도 죄
인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선한 것을 행할 수도 없는 동일한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
니다. 우리의 양심도 역시 화인맞은 자처럼 굳은 살이 박힌 강퍅한 심령들이었음을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런 우리, 죄인된 우리
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마음문을 여시고 그
안에 구원의 복음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선한 양심이 발동하여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
라.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아고 오직 중생의 씻
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인 것을 기억합시다. 즉 우리가 믿
고 구원받도록 성령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였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을 훼방
하며 거역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니까요?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에 정말 감사하며 합니까? 그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자발적인 회개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강제적인 은혜의 역사로 예
수 믿었다는 사실에 감격합니까? 아 하나님의 은혜로이 쓸데 없는자를 구원하신 은혜를 평생
깨닫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