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대접과 7번째 대접의 재앙

by 김세열 posted Jul 1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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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와 7번째의 재앙

계시록16:12-21

현대 의학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중에 에이즈란 질병이 있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또는 인간면역
결핍증으로 불리워지는 질병인데, 아직까지 치료방법을 찾지 못해 한국에 알려진 숫자는 1686명이고
세계적으로 97년 수치로는  240만명이 이미 사망하였고 99년 현재 지구상에 3360만명의 환자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이병은 한 마디로 하면 우리 몸속 질병에 대한 방어기능이 상실되는 병입
니다. 더 구제척으로 말하면  백혈구는 생체의 필요에 따라 체내에 들어 온 자기의 조직과 틀리는 것
(비자기)을 인식하여 그것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이즈의 바이러스는
그 자체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면역을 결핍시킴으로 다른 질병들로 인해 죽게 만듭니다.  "면역
결핍"이란 생체에는 본래 미생물이 체내에서 증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백혈구(白血球)의 기능(면역)이
있으 나, 그 기능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통상태에서는 증식할 수 없는 미생물의 체내증식
을 허용하게 되는것을 말합니다.
오늘 6번째 진노의 대접은 영적 에이즈에 해당하는 재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번째 천사가 진노의 대접을 들고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았습니다. 쏟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수 없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큰 강인 유브라데의 강물이 말라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물이 마르고 강바닥이 드러나자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게 된 것입니
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누구이며 그 길이 예비된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동방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여겨져왔습니다. 그
러므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기위해 원방에서 오는 모든 세력을 통칭하는 상징
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유브라데의 큰 강이 동방의 공격을 가로막는 자연적인 장애물
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6번째 천사의 진노의 대접이  유브라데의 강물이 마르게 하여 그 장애를 제거
하였으므로 대규모의 왕과 그 군대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여기서 유브라데강은 하나님의 백성을 악한 세력의 공격을 억제하는 하나님의 보호장치역할을 합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에는 그 보호장치가 거두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몸속에 나쁜 병균에 대한 보호장치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은 몸뿐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여러분을 해치려고 하는 무수한 일들에게서 여러분을 보호하시
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 보호의 강으로
지키십니다. 여러분에게 보호막을 치고 계십니다. 어떤 악하고 강한 세력이 여러분을 공격하려고 할지
라도 하나님의 어떤 뜻안에서 이루어지는 허락없이는 여러분을 결코 공격하지 못함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사단이 마음껏 역사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
래서 악이 선을 이기도록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해놓았습니다. 그것이 국가와 정부란 제도이며 군대와
경찰들이기도 합니다. 또는 언론을 통해 부정을 감시하게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껏 누구를 미워하고 죽
이고 싶어도 정부와 경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국가간에도 힘이 있어서 남의 나라의 땅과 재
산을 빼앗고 싶어도 다른 나라의 세계의 여론을 인식해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고 회개하지 않으면 보호의 강이 말라버립니다. 6번째 재앙에는 동방의 세력
의 침공을 막던 유브라데가 강물이 말라버린다는 것은 악을 가로막던 세력이 쇠망하게 된다는 것입니
다. 이제 6번째 진노의 대접으로 인해 하나님에의해 억제되었던 악과 사단의 세력은 활개를 치며 사람
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보호장치가 거두어지는 영적인 에이즈의 질병 재앙이 시작된 것
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유브라데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도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보호의
강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사단과 악이 여러분을 침공하여 해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유브라데강이
흘러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뜻대로 섬기며 살 때에 가능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유브라데 강이 말라 적의 침공의 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 구체적인 현상을 13절과 14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
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
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6번째 천사의 진노의 대접이 부어지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이는 귀신의 영이었습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은 삼위하나님을 모방한 사
단의 술책이고 개구리같다라는 것은 더럽다는 뜻을 나타내주는 비유어입니다.
개구리는 성경에서 물에 살면서 비늘이 없는 것으로 가증하게 보았으며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반면
에 애굽에서는 우상으로 숭배하였던 짐승입니다. 따라서 개구리같은 영은 더러운 영이며 귀신의 영을
말합니다. 귀신의 영은 불이 내려오는 듯한 이적을 행하는 방법으로 온 천하 임금들을 모으는 일을 시
작하였습니다. 그들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크날인데 이것은 최후의 심판날을 말합니
다. 이 날에 하나님의 군대와 최후의 결전을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힘을 결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
으는 장소는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어떤 분이 우스개 소리로 인류 역사의 최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아마 누군가 곗돈 떼먹고 도
망가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겟돈전쟁이라고 합니다.
아마겟돈은 원래 발음은 '하르마게돈' 인데 히브리어로는 하르 므깃도입니다. 하르는 산이란 뜻이으
로 므깃도 산을 말합니다. 즉 무깃도란 지명은 북 이스라엘지역의 샤론평야와 이스라엘 골짜기에 있는
므깃도 평원에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무역로의 교차지점이므로 전략상 요충지가 되어 많은 전쟁이 있
었던 곳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에 아하시야가 예후의 화살에 맞은 곳이며, 바로느고가 유대왕 요
시야를 죽인곳입니다. 따라서 므깃도는 전쟁의 상징으로 여겨져왔고 그래서 최후의 전쟁도 이곳에서
있을 것이라고 여겨져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후의 전쟁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3차 세계대전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런 육적인 전
쟁을 말하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강한 악령의 역사가 인간들을 미혹
하여 죄악과 불신앙으로 휘몰아가는 폭풍이 불어닥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싸움에 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싸움일까요?
어렸을 때에 운동회때마다 빼놓지 않고 단체로 하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기마전입니다. 저
는 원래 성격이 유하기 때문에 기마전같이 과격한 것은 싫어했습니다. 무섭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 기
마전이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기마전에서 적군을 쓰러뜨리거나 기마를 탄 사람의 모자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옷이 찢어지고 얼굴이 할퀴지고 눈이 맞아서 밤탱이처럼 시
퍼렇게 되고 머리끄댕이가 당겨져 헝클어져도 모자만 지켜내면 이깁니다. 그러나 아무 상처도 없고 옷
도 단정하고 해도 모자를 빼앗겨서 머리가 벗어지면 지는 것입니다. 이 싸움의 승리는 모자를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싸움은 옷 지키기 싸움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15절에 오니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옷을 빼앗겨 벌거벗지 않게 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옷을 벗으면 부끄럽게 되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 옷은 무슨 옷이냐 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의의 옷입니다. 그것은 흰옷이
며 성도들이 칭의를 받아 입게된 옷입니다. 이 옷은 주님을 믿음으로 입는 옷입니다. 믿음을 떠날 때에
는 벗겨지는 옷입니다. 영적정결을 지켜나갈 때에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언제 이 옷을 빼앗기게 됩니까? 깨어있지 않고 잠자고 있을 때입니다. 잠자는 것은 비유입니다. 도
둑이 옷을 벗겨가도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세상에 취해 세상에 빠져 잠자는 것입니다.
세상은 위협적입니다. 전쟁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
지 못하도록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세상은 또한 너무 쾌락적이고 향락적입니다. 물질만능주의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쾌락과 방탕으로 취하게 만들고 세상의 출세와 성공을 향해 온 마음을 빼앗기게 합니
다. 이것도 졸며 자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근심과 염려로 마음이 어두어져서 믿음을 버리게 합니
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를 잠자게 하고 성도들에게서 주님이 주신 의의 옷을 벗겨가려고 합니다. 그리
고 우리를 주님의 심판대앞에서 함께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은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도적은 예고없이
옵니다. 불시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습니다. 신부는 깨어 있고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부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은 긴장하며 사는 데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일 오시겠는가? 하면서 한번만 더 죄짓고 다음에 회개하지 뭐!
이런 것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입니다. 위험의 경계선까지 가는 신앙입니다. 여름철 해수욕장에는 수
영을 금지하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수영을 조금 하는 사람들은 점차 그 경계선에 나아가고 싶
은 마음이 듭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보자 하고 위험지역의 경계선까지 나아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죄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더, 한번만 더 하면서 죄에 나아가고 빠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
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알수 없기에 우리는 안일하게 세상에 빠져서 잠자는 삶
을 살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있는 삶을 사시길 축원합니다. 늘 주님을 생각하며 불신앙과 비윤리적인 삶이 되지 않
도록 긴장하며 사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일곱째 대접재앙은 이제 최후의 재앙입니다. 그 재앙은 시작은 성전의 보좌로부터 나는 하나님의
되었다는 음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이 되었다는 말씀일까요? 이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사단의 권
세를 훼파하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는 일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이루어질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될 것이다가 아니라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
습니다.
일곱재앙의 현상은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있고 엄청난 재앙의 지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이래로 최악의 지진입니다. 그래서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게되고  만국의 모든 성들이 무너지는 재앙이었습니다. 모든 섬과 산악도 간데 없이 사라져버릴 지
진입니다 게다가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이 쏟아지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달
란트느 34킬로그램입니다. 여러분 저희 집에 있는 아령이 8킬로인데 잘못굴러서 발에 찌었는데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 아령이 제 머리에 떨어진다면 죽음입니다.
그런데 34킬로의 우박이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모든 생물과 건물이 박살나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이것을 현대전의 미사일이나 폭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일곱째 재앙은 한 마디로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명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대한 지
진이든 거대한 우박이든 세상은 완전히 파괴되고 박살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번영된 나라
의 문화와 문명도 이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산산 조각이 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제것 소망하고 바라는 것들이 이 세상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직장입니까
물질입니까 큰 아파트와 좋은 차입니까? 이 세상의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는 동안만입니다. 모두 영구하지 못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곧 사라질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과 문화도 마
찬가지입니다. 정해진 시간동안 사용하고 반납해야되는 렌트카와 같습니다. 마치 재 건축될 집과 같습
니다. 곧 부서지고 말 집입니다. 없어질 세상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집도 차도 문명도 문화도 음악도
다 사라질 한시동안의 세상의 것들입니다. 빌려온 것들입니다. 모두가 필요에 의해 일시동안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과 땅과 건물과 모든 것이 여러분의 후손에데 대대로 물려질 것처럼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참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곧 재 건축될 집에 살면서 도배 장판하고 페인트칠하고 집수리하고 사는 사람보셨습니까?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입주하면 도배장판하고 수리합니다.

주님이 새 집을 창조할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게될 곳
을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사는 도성을 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곧 부서지고 파괴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재건축될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이루려는 시도는 어리석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는 동안 하늘을 향해 소망을 두며 하늘에 쌓아두며 우리가 영원히 거할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되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여 살아
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모두 사라질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늘을 향해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그곳의 삶을 기억하며 사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