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말하는 주일학교 교사

by 김세열 posted Jul 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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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1:1절_14절

오늘 예배는 주일학교 교사헌신예배입니다. 저희 교회는 매년 7월 중순에 교사 헌신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교사들이 특히 7월중에 헌신의 마음이 생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부터 유아부 유년부를 시작으로해서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는데 이 때 1년 365일 내내 수고와 헌신이 있지만 특히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에 더욱 헌신하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중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사의 상은 물론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는 모습, 가르치는 모습, 섬기는 모습, 이모든 것이 교사의 모범입니다. 그 다음에 찾을 수 있는 교사의 모범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제자들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 것이 특별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후에 사도록 택정함을 받은 바울은 교사의 모범을 보인 부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목회서신인 디모데의 내용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중에 디모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디모데는 선교여행을 함께 다니며 전도하는 것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지식적으로 체험적으로 가르쳤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좋은 주일하교 교사는 어떤 자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좋은 교사는 자신에게 맡겨준 아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처럼 늘 생각하는 교사일줄 믿습니다
먼저 바울은 2절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울이 영적인 제자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교사의 첫 번째 모범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제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면 아들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처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냐라고 물으신다면 3절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아들은 늘 부모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제가 제자훈련을 할 때 훈련과정중에 졸업여행이나 야외 학습이 있어서 밖으로 나갈 때가 있고 다른 때보다 수업이 연장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나타나는 특징이 오후 2, 3시쯤되면 집사님들이 아주 부산스러워집니다. 좀 분위기좀 잡고 찬송이나 진지한 프로그램을 갖을 때거나 아니면 친교시간을 가질 때나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집사님들이 모임에서 하나 둘씩 교대로 자리를 뜨고서는 아이들과 전화통화하느라고 바쁩니다. 너 학원갔니? 뭐 아직 안갔다구. 왜 안갔어. 너 오늘 선생님 오시는 날 알지? 집에 나가지 말고 숙제 해놔. 그리고 동생좀 챙겨. 싸우면 안돼.  엄마 곧 갈게, 얘 집에 있는 샌트위치 먹고가, 뭐해. 열쇠는 경비아저씨한테 맡겨.
그럴 때에 늘 깨닫는 것이 역시 엄마마음은 항상 아들에게 가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부모도 마찬가지이며 악한 부모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죽어서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저는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곧 죽음이 임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자신이 감옥에서 건져지기를 기도하고 자신이 구원받기를 생명이 연장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신변에 대한 염려와 간구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간구중에 한번도 빼먹지 않고 쉬지않고 기도한 제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제자이며 영적아들인  디모데를 위한 간구였습니다. 디모데가 안전과 영적생활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제자훈련하면서 기도숙제를 내줄 때가 있습니다. 몇주간은 매일 제자반 훈련생 모두를 1분이상이라도 위해서 기도할 것! 안하면 양심것 벌금 천원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는 저도 이제 모든 제자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자반 사역반 집사님들 이름을 불러가면서 쭉 기도하면 제마음에 참 집사님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내가 지도교역자로서 참 잘하고 있다는 뿌듯한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숙제내주고 하는 주간은 어쨋든 제자반 사역반 모두 이름불러가며 기도합니다만 숙제가 없어지면 " 아 집사님들 뭐 잘들 있겠지? " 그리고 우리 제자반 집사님들 사역반 집사님들 믿음안에서 성숙하고 잘되게 해주소서하고 한꺼번에 몽땅 해치우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며 제자인 디모데를 밤낮 쉬지않고 생각하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주일학교 교사분들이 반아이들을 정말 자기 집 아들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교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들처럼 생각한다면 그 아이는 늘 선생님의 마음속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신앙뿐 아니라 학업 또는 친구관계 가정형편을 알며 모든 면에서 기도하며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사는 자신에게 맡겨준 아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처럼 늘 생각하는 교사일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적인 성숙과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교사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교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둘째 주일학교의 교사는 복음을 위한 교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1절에 내가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교사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우심을 입었노라입니다. 즉 능동적 행위가 아니라 수동형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위하여 바울을 교사로 세우셨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교사는 하나님이 세운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교사는 자신의 사명이 복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사들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일학교의 지도교역자의 목회철학이나 지도방침에 영향받을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그 목적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복음을 위한 사명은 교사를 세우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요 교육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복음과는 상관없다면 그는 어떤 세상의 어느과목 교사가 가능할수 있지만 적어도 주일학교 교사와는 무관합니다. 복음을 잘모른다면 그는 누구를 가르쳐도 되지만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자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헤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물론 복음을 다른 단어와 표현으로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을 나타내심
복음은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예수안에서 값없이 죄사함과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일학교 교사님들은 복음의 교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대하여 분명히 알 뿐 아니라 복음을 가르쳐주십시오. 재밌는 놀이도 가르치고 게임도 가르치고 만들기도 가르치십시오. 그러나 결코 복음보다 먼저 가르치지 마시고,  복음보다 중요하게 가르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그들의 재능을 키우고 즐겁게 하기 위해 교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할 유능한 교사는 얼마든지 세상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러분만이 복음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여러분들만을 주님이 교사로 세우신 것은 복음의 교사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먼저 가르칠 뿐 아니라 중요한 것은 복음의 삶을 보여주시는 교사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복음의 삶은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은혜받은 자의 삶입니다.
아이들 잘못할 때마다 너 안하며 매맞기로 했지 몇대? 그리고 찰싹 찰싹, 너 이것 잘못하면 벌서기로 했지? 손들어. 너 감점10점 너 벌점 20점
제가 중고등부 지도한 것이 근 9년을 했습니다. 수련회만도 거의 18번을 했습니다. 그 때에 수련회마다 조별로 점수를 매깁니다. 잘하면 10점에서 30점 못하면 벌점 몇점
그런데 저는 이런 것도 대충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서 일일이 감시선생님두어서 아이들 잘못한 것 체크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불정돈 불량, 신발불량, 옷차림 불량, 불량언어사용 벌점! 뭐 철저하게 합니다. 그런데 몇 년하다보면서 깨달은 게있습니다. 철저하게 하면 할수록 그 수련회가 잘돌아가는 듯합니다. 시간맞춰서 조별로 줄서고 잘 모이고 청소도 잘합니다. 그런데 수련회가 삭막해집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경쟁하구요.점수때문에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뭐 그러든 말든 헤헤 웃으면서 얘들이 욕하든 뭐 질서 안지키든 그냥 용서하고 대충 넘어가면 좀 수련회가 무질서 한 것 같아도 아이들이 자유롭고 은혜를 느낍니다. 학교에서 늘 그랬는데 교회 수련회 왔더니 더하더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학교와는 달리 가족같은 무엇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은혜를 베풉니다. 용서받은 자들은 용서합니다. 용서없는 교사는 아직 율법적입니다. 율법은 용서가 없습니다 철저한 공의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잘한 행위없이도 잘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의한자를 의롭다하고 죄인을 불러 의인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잘못해도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여러분 교사되시기 바랍니다. 잘못을 잘못이라 가르치되 예수님 때문에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는 복음의 교사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복음의 삶의 다른 하나는 고난을 감수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후배 교사가 될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 말합니다.
8절에"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로 오직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2절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탁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줄을 확신함이라.

복음를 전할 때에 핍박이 오고 조롱이 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 때문에 지금 투옥당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전도지를 돌릴 때에도 세상 사람들과 경비아저씨들에게 모욕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지를 뿌리친다든지 받은 전도지를 찢어버린다든지 할 때 얼마나 수치감을 갖게 되는 지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사가 될 때에 힘든 일이 이만 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야 되고 아이들 챙기는라 자기 가정을 돌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내가 교사자격이 없어 나는 교사체질이 아냐하면서 그만두고 싶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사 여러분
주님이 교사에는 고난이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그것은 2000년의 바울과는 다를것입니다. 오늘날에 오늘날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고난받을 때는 여러분 억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서 받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음으로 가능하다 
12절 -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 예수님과 하나님이 의뢰하심이며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 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즉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의탁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바울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키우는 교사여야 합니다.
13 14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dorp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8장에 가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게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은 우리들에게 복음을 의탁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바울이 의탁한 것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의탁한 것을 지키며 전하라 했습니다. 우리는 교사와 전도자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주님안에서 들은 모든 것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여 지키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제자를 아들처럼 사랑하는 교사요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며 그 제자들을 또하나의 복음 전도자로 세우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서울광염의 모든 주일학교 교사가 이처럼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