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바벨론에서 나오라

by 김세열 posted Jul 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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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바벨론에서 나오라
계시록18:1-20절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이 멸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바벨론은 17장에는 큰 음녀라고 비유되어 음녀가 죽임을 당한다는 예언으로 이미 예고 되었습니다만 본장에서 확실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음녀와 바벨론 성은 같은 뜻입니다. 바벨론의 특징은 큰 성이며 각종 상품을 가진 상고들이 많은 성입니다. 이 성은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비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호화로운 성이었습니다. 아주 화려하고 부한 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종 보석과 붉은 옷으로 치장하고 일곱머리 열뿔을 탄 음녀와 같습니다. 음녀와 바베론은 모두 그것은 바로 음란하고 타락된 세상의 문명을 비유합니다.

바벨론이 어떻게 멸망하게 되는지 구절들을 살펴봅시다
요한은 하늘에서 큰 권세와 영광을 가진 천사가 힘센 음성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아직 바벨론은 멸망하지 않았지만 무너졌도다라고 과거형으로 선포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는 바벨론의 멸망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두 번이나 무너졌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벨론은 더럽고 추한 폐허가 됩니다.
이 바벨론 멸망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나오는데 8절에보면 "하루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니니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10절에는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17절에도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으로 끝나며 멸망의 특징은 일시에 하루동안에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십층이나되는 거대한 빌딩을 지으려면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도 수 년동안의 노력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빌딩이 수한이 다 되어서 도시계획으로 인해 다른 새 빌딩을 세우려고 할 때 이 노후된 고층 빌딩을 무너뜨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전의 방법은 집채보다 큰 거대한 공모양의 쇠구을 기중기에 매달아 가지고 마치 회전운동의 원심력으로 콘크리드 벽을 쳐서 무너뜨리는데 이 무너지면서 주위에 있는 건물들의 피해가 너무커서 어려움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의 다른 빌딩들에게는 전혀 손상이 없이 빌딩을 파괴하는 공학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건물들을 세밀히 연구해서 폭파장치를 하게되는데 건물의 어느 부분을 얼마만한 폭약으로 설치해야 되는가하는 연구작업이 고도의 기술과 연구작업후에 파괴한다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 수천년동안 지어지고 수만개의 빌딩을 가진 거대한 도시를 파괴하는데는 얼마나 오래 걸리겠습니까?
큰 성 바벨론이 얼마의 기간동안 멸망했을까요? 성경은 모두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루동안, 또는 일시간에 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렙론의 멸망의 시간은 일시간에 갑작스럽게 멸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심판을 당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천년이 하루같이 참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내가 속히 오리라하였지만 아직 구원받을 백성들이 많기 때문에 참고 참으시며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님께서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죄악이 더욱 관영하여 졌을때는 마침내 하나님이 손을 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실 때는 일시간에 하루동안에 그 엄청난 힘으로 그 영광스럽고 권세있는 세력을 일시간에 무너뜨리는 역사를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불시에 나타납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마치 갑자기 밤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그래서 밤새 깨어있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 심판을 예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벨론의 멸망을 보면서 세상의 문명도 문화도 그렇데 일시간에 멸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세상은 아주 영광스럽고 굉장하여 사치스러운 것과 탐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처음 고급 백화점에 들어간 산골의 아이가 고급대리석과 수많은 조명등아래 찬란히 빛나는 장난감과 화려한 옷들과 보석들에 눈이 휘둥그레지듯 말입니다.
강남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백화점에서 보면 작은 핸드백하나에 오십만원 조그만 옷가지 하나가 백만원 이처럼 최고의 비싼 물건들이 온갖 콘크리트와 먼지속에 널부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 싶어도 잘 살수없었던 사치스럽고 화려한 영광의 것들이었지만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한 예입니다만 이처럼 세상의 문명도 하나님이 정해진 심판의 때에 그 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무너지고 도무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무너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출세라는 말을 쓸 때 세상에서 높게 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잠시동안 유지되고 결국은 일시에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마치 재건축하게 되어 철거될 아파트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도 일시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곳은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결코 무너지지 않는 우리의 처소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이세상에 보물을 쌓아야 하겠습니까?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야 겠습니까? 이 세상의 상을 바라보아야 겠습니까?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고 살아야겠습니까? 나의 일이 중심이 되어야 겠습니까? 하나님나라의 일을 먼저 구하여야 겠습니까?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벨론 성이 왜 무너졌는가하는 이유입니다. 왜 바벨론 성이 무너졌을까요?
3절에 보면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등고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그 망한 첫째 이유가 음행때문이었습니다. 이 음행은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과 영적으로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사랑하는 우상숭배가 모두 음행입니다. 세상나라가 멸망받는 것은 음행이고 또한 사치와 치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치와 치부를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재산이 많다고 마음껏 돈을 사치하는데 사용하고, 억만금을 쌓고 쌓는 치부에 인생을 소모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는 일이 아닙니다. 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한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재물을 많이 얻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 재물을 치부하고 사치하는 것은 화가 되는 재물입니다. 그것을 선하게 사용할 때에 복된 재물이 됨을 기억하십시오.

바벨론의 심판의 이유는 5절에도 있습니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바벨론은 죄와 불의한 일을 인하여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24절을 보면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즉 바벨론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이 많았고 이로 인하여 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바벨론성은 음행과 사치 그리고 불의 그리고 성도의 핍박으로 인해 망하는 것입니다. 음행과 사치와 불의와 핍박은 심판의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악을 아시고 기억하셔서 그의 행위를 보응하시되 갑절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안에 여러분의 가정에 진노의 표적들을 제거하시길 바랍니다. 이미 제거되었다면 다시는 이런 죄악의 모양이라도 여러분안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 모든 심판의 표적이 되는 죄악들은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을까요? 그 힌트가 되는 구절이 7절입니다.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바벨론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성이었습니다. 또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게가다 바베론은 자신이 가장 위대한 주관자인 여황으로 가장하고 열국으로 자기를 숭배하게 한 것입니다. 과부가 아니라는 것은 과부는 애통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결코 애통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의 문화와 세상의 문화의 특징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신을 사치하는 것입니다. 이역시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이도 영적 음란입니다. 하나님외에 자신이라도 영화의 대상이 되어선 안됩니다.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것도 우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너희는 왜 우리처럼 세상을 위해 살지 않느냐고 하면서 박해하고 불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피조된 것은 너무다 명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다스리시되 그 기쁘신 뜻대로  생명과 권세와 부와 귀를 주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하나님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부와 귀를 받은 모든 인간들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벨론과 같은 세상문화는 어떻습니까?
그 문화의 특징이 바로 자기를 위해 살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며 치부하라는 것입니다.

뉴에이지 문화가 최근 유행합니다. 요가나 명상 기체조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신처럼 살 수 있다는 문화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의 능력을 무한대로 끌어올리며 정신을 통일하여 자신을 신의 능력을 가질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하나님대신 자신이 신처럼 될 수 있고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으니 하나님께 영광돌릴 이유가 없게 만드는 불신 사상입니다. 이것은 영적 음란이며 불의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음란하고 교만한 사상을 일시간에 심판하시고 망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은 끝내 영화롭게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나라에 인도하시니까요? 그러나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그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사상이든 사람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당해 비참하게 멸망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주는 경고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말라"
한마디로 하면 거기서 즉 세상에서 나오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 속하면 음란과 사치의 불의에 물들게 되어 있고 함께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재앙을 받아 멸망받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묵을 만지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검게 된다는 말이 근묵자흑이란 고사성어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있으면 죄에 참여하게 됩니다. 시편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복된 자는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자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 복된 자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도망쳤습니다. 죄의 자리에 함께 하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함께 있으며 함께 죄짓고 함께 멸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의인의 줄에 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교훈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롯의 딸과 정혼한 사위들은 그 말씀을 듣고는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 그 사위들은 의인들의 행렬에 끼지 않고 죄인된 소돔사람들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불바다속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받을 죄악의 성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성에서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재앙을 피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당신이나 잘믿으라고 농담처럼 여깁니다.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면서 불신자는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자신은 천국이 만원이라 지옥가겠다고 되받아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오라고 할 때 미련없이 진실하게 나와야 합니다. 육적인 음행과 영적인 음행에 동참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사는 인생에서 돌이켜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지혜, 그리고 재능과 물질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만을 영화롭게 쓴다면 그것은 바벨론문화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평생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럼 어떻게 그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자꾸 만나면 정듭니다. 세상을 자꾸 만나고 세상의 사람들을 자꾸 만나면 세상과 정이 듭니다. 세상의 음란한 문화를 자꾸 접하면 그 음란한 정신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속으로 들어와 자신을 주장합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주님과 만나더라도 남은 167시간을 세상속에서만 살면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므로 주님과 정드는 방법뿐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주님과 자주 교제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예배때마다 참석하고 성도들과 자주 만나 은혜의 말씀으로 교제하고 늘 하나님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물이 가득찬 컵과 같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세상의 온갖 오염된 공기가 자신도 모르게 그 물에 녹아들어가 물이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그 물을 깨끗게 하려면 늘 그 속에 생수를 부어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더러운물이 넘쳐 흐로고 그 물은 점차 생수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 생수의 강이 넘쳐흐릅니다. 늘 예수님과 교제하면 나도 모르게 더러워진 나의 마음이 바뀌어지고 나의 정신이 바뀌어져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더러워지고 멸망하게될 세상의 정신들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멸망할 세상가운데서 나오라는 말을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깨닫고 말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더욱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예배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리시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 낮에만 참석하던 분은 저녁예배에도 참석하고, 수요예배도 참석하고 금요기도회도 참서하고 심야기도회도 그리고 개인경건의 시간을 갖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욱 말씀을 읽는 시간을 만드시고 교회의 성경공부시간에 등록하시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하는 일로 시작되어야 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살면서 거룩한 마음의 소원만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 수없습니다. 왜냐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오염된 물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 물이 내 감정과 내 생각을 오염시킵니다. 결단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죄악된 세상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의 한 복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