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고 찬양할 이유를 아시나요?

by 김세열 posted Jul 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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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뻐하고 찬양할 이유를 아시나요?
계시록19:1-10절

사도 요한이 바벨론의 멸망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바벨론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꾀하던 적그리스
도적인 세상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올리는 세 종류의 찬
양을 들었습니다. 먼저는 하늘에서 들리는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찬양은 수
많은 무리들의 찬양이었으므로 장엄하고 웅장한 찬양소리였을 것입니다.  그 찬양의 내용은 이것입니
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
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두 번째 찬양은 보좌에서 나는 찬양이지만 하나님이 부르는 찬양은 아닙니다. 보좌옆에 있는 24장
로이거나 4생물중에 하나에서 나는 음성일 듯합니다.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두 번째 찬양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음성이라면 첫 번째는 찬양을 해야할 이유
가 담겨있습니다. 그 이유란 바로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말에 악한 세상나라을 멸망시킬 능력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며 그
세상나라에서 하나님를 믿는 성도들을 구원해내는 것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며 따라서 그 모
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찬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입니다. 지옥형벌을 면
하게 되었다면 역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천국의 영광을 누릴 몸과 영생을 얻었다면 이 역시 하나님
의 구원이니 하나님 홀로 영광을 받아야 합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이것으로도
넘치고 충분한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음녀인 세상을 심판한 것이 거짓
되지 않고 불의하지도 않고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찬양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찬양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
은 찬송가를 많이 부르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
는 것이 찬양입니다. 
이런 가정을 한번 해봅시다.
"어떤 사람이 화재가 나서 곧 붕괴직전의 건물에 갇혀있다고 가정합시다. 건물의 일부분이 이미 붕
괴되었고 자신이 갇힌 그 건물도 곧 붕괴직전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다리가 부러졌고 부상도 입었습
니다. 붕괴가 지연된다 하더라도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죽을 것입니다.  이미 주위의 수많
은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곧 화재로 붕괴될 건물안에서 부상당한 그가 혼자 힘으로 살아나올 확률은 0
입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한 소방대원이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을 끌어
다가 창문을 깨고 창밖 안전 매트리스 위로 내던졌고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건물은  붕괴되어
무너져 내렸고 그 소방수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가정입니다만 실제 뉴욕무역센타가 테러
범의 공격을 붕괴당할 때에 시차를 두고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붕괴직전의 사람들을 구조하기위한 수
많은 소방대원이 몇 사람을 살려놓고 자신은 붕괴건물에 죽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붕괴되기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사람들 주위에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질문이 쇄도합
니다.
어떻게 그 죽음의 현장에서 오래토록 버틸 수 있으며 그 죽음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
습니까?
"에 제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 그 이유는 제 신념이었습니다. 평소부터 호랑
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신념으로 버텼습니다. 부상을 당해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살수 있는 길은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야 된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래서 일단은 유독
가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창문가로 기어갔습니다. 그리고 뛰어내렸
습니다. "
"누군가의 도움이 전혀 없었나요?"
"아 도움요 어떤 소방대원이 저를 잠간 부축해 주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방대원 없이도 사
실은 제가 혼자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 소방대원은 곧 사라졌죠. 아마 누군가를 구하러 다른 곳
으로 갔나봅니다. "
"혹 이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게 평소 호랑이에게도 물려가면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을 가르쳐주신 노원 초등학교 국
어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유독가스를 막기위해 수건을 사용하라고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체육선생
님께 감사드려야 될 것 같구요. 무엇보다 제가 튼튼하여 부상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있도록 건
강 챙겨 주신 저희 어머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저를 성원해주신 대한미국 모든 사
람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

이것은 제가 만든 약간 유치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구원받은 그리스
도인들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영광을 가로채고 무시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받은 후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감격적으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제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한 소방대원의 헌신적인 희생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
을 돌보지 않고 나를 부축하고 나를 창밖으로 던져 구해주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행동했고 그의
판단은 현명했습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전 결코 살아나올수 없었습니다. 그가 제 생명의 은인입니
다.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구원자인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직 그 분으로 인해 우리는 죽었던 생명을 찾았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당할 때에 우리는 그곳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자랑해야 합니다. 평
생감사하며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며 증거해야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구원의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3500
명이 복음을 듣게 하신 일을 누가했습니까? 80명의 광염의 선교팀들이 했습니다. 힘들게 죽을 힘을 다
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며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도구입니다. 나무꾼에 손에 들린 도끼와 같습니다.
모세에 손에 들린 지팡이와 같습니다.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맷돌과 같습니다. 나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
며 어떤 능력도 행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맷돌은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돌중에 하나입니
다. 그러나 그 돌이 3000년 전의 이스라엘의 다윗의 손에 들려졌을 때 이스라엘의 대적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때려 눕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에 태어나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시
다. 많은 헌금을 하며, 선행을 하고, 큰 일을 한다고 합시다. 교회에서는 여러 기관에서 중심적으로 섬
기고 있어서,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로서 봉사하고 전도대로 섬기며, 때로는 궂은 일도 한다고 합시
다. 그것은 잘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나를 자랑할 일은 못됩니다. 내가
한 일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왜냐면 내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요 내 믿음을 주
신 분이 하나님이요, 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기 때문입니
다. 그것을 언제든지 잊지 말고 고백합시다. 그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주일학교 수련회가 안전하고 은혜롭게 마쳤다면 그 역시 하나님이 영광과 찬양을 돌립시다. 영동전
도집회가 수많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면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죄와 사
망의 권세에 매인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신 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시다.
아니 여러분의 가정이,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직장이 사업장이, 오늘도 사고 없이 생명가운데 있
다면 그것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 번째 찬양은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이므로 첫 번째 찬양과는 같지만 그 내용이 구분이 됩니다.
그 찬양은 바로 종말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 기약이 이르고 아내가 예비된 것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내
용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
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이 크게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아내가 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아내는 바로 성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반드시 약혼식을 합니다. 그리고 혼인예식을 치르게 되는데 약
혼한 때부터 이미 부부의 권리와 의무를 지니게 되어 약혼녀 역시 정절을 지켜야 되지 간음을 하게 되
면 쳐죽임을 당할 죄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피로서 성도들을 값주고 사서 자신의 영적인 약혼녀로 삼으신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도들을 신부로 맞아 하나님나라로 인도해 들이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주님이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멋진 신랑을 생각하면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신랑과 함께 살 신
혼을 생각하면 지금 어떤 고통의 일이 있다하더라도 꿈에 부풀어 행복합니다. 새로 마련된 집에 들어
가서 살 생각에 지금 있는 이 집이 좁고 누추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변치않는 기쁨의 근원인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주님
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으로 이 세상에서 고통의 사건에서도 위로받고, 설사 사
랑하는 이의 죽음이 온다할지라도, 아니 내가 이 세상에서 먼저 죽는다고 할지라도 눈물을 닦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과 영적으로 하나되어 늘 교제하며 사는 천국이 여러분에게 늘 생각되고
소망되어 여러분의 삶이 기쁘고 즐겁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의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삶의 문제에 대답을 가르쳐줍니다.
8절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
실이로다 하더라
신부에게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가 허락되었습니다. 이것은 음녀가 붉은 빛과 자줏빛의 옷을 입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천사의 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허락
하셨다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그 옷은 누가 주었을까요? 누가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입니다. 이 옷
은 바로 의의옷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을 믿는 자에게 의롭다 칭하시며 주시는 의의 옷입니다.
그리고 이 세마포는 하늘의 24장로들과 천사들과 하늘의 군사들이 입고 있는 옷입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말이 참 혼돈스럽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성도로서 옳은 행실을 했기 때문에 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이 자
기의 착한 행실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님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세마포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선한
행실을 가진 자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을 불러 의의 옷을 주십니다. 그런데 의의 옷을 입
은 후에는 전처럼 살아서는 안돼고 정결한 신부처럼 살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으로 의롭게
된 것은 목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아직 죄악을 좋아하는 몸입니다. 갑자기 교만
과 시기와 질투 탐심들의 죄악들이 날마다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죄에매여 살게 하십니
다.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입혀준 희고 깨끗한 옷을 지어 입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흰 세마포를 더럽히
지 않도록 애쓸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진리를 나타내줍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에게 대
속으로 죄악에서 사망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하셨습니다. 누구도 인간 스스로
자신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의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예수님에게서
의의 옷을 입은 후에 그 옷을 깨끗케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몫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학용어로 성화입
니다. 점점 거룩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과 칭의는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성화는 하나님과 협력
하는 인간의 몫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성화도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짓는 죄를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려버립니다. 내가
음행을 하고 방탕하고 도둑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성화를 하지 않은 탓이야. 하나님
왜 제가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따라서 내가 죄를 짓은 것은 하나님탓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조장하지도 짓게 유도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
은 것은 언제나 인간 스스로 죄악에 끌려 지은 죄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후에도 동일합니다. 이 흰
세마포를 희게 지키는 것은 성도들이 죄악된 행실을 의지적으로 버리고 옳은 행실을 추구하므로 가능
합니다. 이 옳은 행실을 하는 것 역시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도 성령님
을 의지적으로 따라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살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은 마음이 착한 자에게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혀준 의의 옷, 희고 깨끗한 세마포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
나님의 말씀에 성도들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었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보는 옷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흰 세마포옷이 입혀져 있는 것이 보입니까?
그렇다면 그 옷이 더렵혀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그
러면 다시 깨끗해질 것입니다. 목욕한 자에게도 날마다 더러워진 발은 씻어야 됩니다.

끝으로 천사는 요한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다
다시 이야기 합니다만 어린 양에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영원한 기쁨의
삶을 살도록 초청된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혼인잔치가 기쁨의 축제이듯 주님과
더불어 사는 천국의 삶은 기쁨과 희락의 삶이 될것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혼식장에 하객을 보면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알수 있습니다. 결혼식장에 떵떵거리는 국회의원
지방유지, 장차관들이 온다면 그 결혼식은 대단한 권세자의 자녀의 결혼식입니다. 그런 결혼식에는 아
무나 참석하기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왕자의 결혼식에 아무나 초청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존귀한
자들만 초청합니다. 그 때 여러분이 초청장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지위는 꽤 높은 증거입니다. 노회 어
르신들이 교회 행사를 할 때에도 조현삼목사님에게는 초청장이 가끔 오지만 부목사인 제게는 아무것도
안옵니다. 벌써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들은 참 복받은 분들입니다. 그 복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받았습니다. 세상의 유명하고 힘쎈
자도 그 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
도의 결혼식에 당당히 초청받은 자들입니다. 아니 초청받은 자들일 뿐 아니라 함께 영원히 살게될 신
부와 같은 자들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이라고 믿어지시면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이 참되
게 복이라고 하니 믿어야 합니다. 제 말이면 안 믿어도 되지만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므로 믿어야 합
니다. 나는 복받은 자다. 나는 복받은 자다. 이 기쁨을 소유하시고 사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