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를 타고 오시는 예수를 보십시오

by 김세열 posted Aug 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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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9:11-21

1. 백마 탄 자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며 오신 목적은 심판과 싸움이다.
백마 탄 자는 공의의 심판자이다. 백마는 승리를 뜻하는 상징이다. 심판자는 최종 결정권자이며 권세자이다. 또한 공의로와야 올바른 심판을 할 수 있다. 그 공의의 심판은 사람은 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불의하기 때문이다. 천사가 할 수 없다. 천사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천지 대권을 받은 자가 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철장으로 다스리는 영상은 늘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영상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예수님을 나타내는 이름이 몇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16절에는 그 옷과 다리에 이름이 씌여져 있는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즉 모든 왕들중에 최고의 왕이며 모든 신들중에 최고의 참신임을 말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화장실이 집밖에 마당에 있는 집에 살았습니다. 거의 변소입니다. 화장실 불빛은 왜 빨간색으로 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제일 무시무시한 불빛인데 겨울에 밤에 찬바람이 불고 할 때는 너무 무섭습니다. 앉아 있을 때는 꼭 빨간휴지 줄까 노랑휴지 줄까하는 귀신이야기가 늘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귀신 절대 못나오게 해주세요.
그 때마다 제게 위로되는 말씀이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것입니다. 귀신하고 하나님하고 싸우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하나님이 신중의 신 만주의 주이므로 반드시 이긴다라는 확신입니다. 목회에 할 때 혹이라도 아주 심령이 강퍅한 사람이나 귀신들린 분을 만나게 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전도집회를 하는데도 2사람이이 술에 취해서 설교중에 저를 향해 소리를 치면서 항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비를 이렇게 내려서 피해를 당하게 하느냐, 왜 전도하면서 앞집까지 오고 우리 집에는 안왔는냐"
원래 저는 겁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거의 싸움을 안했습니다. 착해서가 아니라 맞을까봐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 영적으로 나를 핍박하거나 공격적인 상황이 와도 이제는 담대할 수 잇습니다. 왜냐하면 내안에 성령님 계시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최고의 신이다. 내가 저를 무서워하는 것보다 저가 나를 더 무서워할 것이다. 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11절에는 그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격의 특징을 말합니다. 천성두 장로님은 이로 보면 정열, 우리 박시완집사님은 화평, 김창수집사님은 충성, 저는 온유라고 하데요. 이렇게 그의 성격을 대표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충신과 진실인데 충신은 충성, 신실과 같은 단어이며 진실은 참된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충성되이 행하여 참된 구주가 되신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영원토록 우리의 구원을 신실하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변덕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을 만 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중에 아주 자주 바뀌어서 신뢰감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다르고 저녁달라서 조령모개 조삼모사 작심삼일 부화뇌동 변덕이 죽끓는다는 것은 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신실함이 없고 진실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약속을 받아도 언제 바뀔지 모르니 해야 하나부다. 그 때 가봐야 된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히 과장되고 자랑하고 거짓되는 것입니다. 자기 실제보다 지나치게 낮추는 것도 겸손이 아니라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실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잘못하는 일이 없는 완벽한 자가 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되고 신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신실한 것이며 정직한 것입니다. 또한 잘했으면 잘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어느 면에서 정직한 것입니다.  속으로는 나 잘났지 하면서 겉으로는 나는 못났습니다. 이것은 겸손으로 비쳐질 지 몰라도 외식이 됩니다. 마음과 겉이 같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처럼 충신과 진실의 이름을 갖는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13절에는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의 칭호로서 예수님이 진리되심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반드시 이루어지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 말씀처럼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주님은 심판하실것이며 말씀처럼 의인과 죄인를 구별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심판주가 되실 것입니다. 

본문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형상의 특징이 두가지 있는데 그 눈이 불꽃같은 것과 머리에 많은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에 많은 면류관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영광을 받으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꿰뚤어 보시고 심지어 인간의 모든 숨은 마음을 밝히 아시는 통찰력을 가진 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눈이 불꽃같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음이며 성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충신되고 진실하여야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 인간의 마음이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였다는 반증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지 전에 우리 죄악된 인간은 더럽다고 성경이 진술하는데 열린 목구멍은 무덤같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같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겉으로는 착하고 예의바르게 보이더라도 속으로는 화내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가득찬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동전도를 마지막에 우리 여집사님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의해 쥐잡기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이 쥐잡기 게임을 위해 남편집사님들이 바카스와 음료수를 공급해줄 정도를 멍석을 깔아줘서 1부리그 2부리그 하고 종합대회까지 열어서 올스타 7명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중에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이 있습니다. 몇 년전에 중고등부에서 시작했다가 청년부수련회에서 대유행을 했다가 저의 제자훈련 집사님들에게까지 파급된 게임입니다. 언젠가 우리 집사람이 저를 보고 체육목사라고 하더니 별걸 다 가르칩니다. 여집사님들에게 농구 슛쏘는 법, 쥐잡기 게임에 고백점프등  레크레이션목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 적도 있습니다. 주여 저를 올바르게 인도하소서!
그런데 그 게임은 여러 사람중에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인데 이것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범인을 찾아내야 하고 범인된 마피아는 자기는 선량한 시민이라고 거짓말로 속여야 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이 어떤 면에서는 거짓말을 훈련하는 게임같아서 썩 좋게만은 여겨지지 않는데, 고수들끼리 모이면 꽤 흥미는 진진합니다.
제가 이게임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천성적으로 거짓말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이 서툴러서 어딘지 표시가 납니다.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시선이 불안하고 말이 많아지고 등등입니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하면서는 약간 적응이 되면 곧 고수가 되는데 얼마나 뻔뻔스러워지는지 범인들이 내가 범인이 아니다. 절대 절대 아니다. 내가 범인이면 내손에 장을 지져라에서 부터 입술에 침한번 바르지 않습니다. 또한 위기에 몰리면 선량한 시민을 범인으로 유도하기도 하고 자기가 살기위해 동료마피아를 배신하기도 하고, 별의 별 방법들이 나옵니다. 어떤 지능범은 내숭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척 어리벙벙한 체합니다. 그래서 선량한 시민들은 오해받고 의심받아 정죄되거나 사살당합니다. 오히려 범인들이 승리하기도 하고 얼마나 뻔뻔한 말을 태연하게 하는지, 선량한 시민들이 억울하게 죽게 되는데 나 아냐라는 소리를 몇번해도 믿어주지 않자 답답해하고 억울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게임이 종료되어 진실이 밝혀지면 그런 적나라한 서로의 모습에 놀라고 즐거워합니다. 제 자신도 몇번 해보면서 그걸 느낍니다. 청년부에서는 김태환집사님이 이게임의 지존무상의 고수라는 평이 있습니다. 그런 것 보면 집사님도 그런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죄를 지었다하면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농담입니다.

그때 저는 저를 포함하여 우리는 모두 기회만 되면 모두 탁월한 거짓말쟁이요 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안에 있는 죄성이 언제나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내 안에 죄가 나를 사로 잡아오는도다라는 탄식이 정확한 자기인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를 부정하는 범법자들의 죄를 시인하게 하는 검사나 우리 수사계의 유헌수집사님같은 형사들이 보통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헌수집사님은 특히 마피아게임을 열심히 하시면 진급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눈이 불꽃같은 분입니다.  아무리 간교하고 사악하게이 숨기는 모든 거짓과 악과 불의를 단번에 찾아내십니다. 그러므로 선량한 그리스도인이 억울하게 정죄되는 법이 없으며 외식적인 악인이 승리하는 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복음입니까? 그러므로 의인이 정죄되거나 오해받는 일이 없게 됩니다. 공의롭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정죄되지 않습니다. 비록 아직 죄성이 있고 죄와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정죄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 보혈이 우리의 몸에 흐르고 있는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를 피해갈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13절에 보면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흘린 피가 아닙니다. 이것은 15절에 예수님의 심판때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광경입니다.
예수님은 만국을 치겠고 철장으로 다스리며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진노의 포두주틀을 밟을 때에 그 포도의 붉은 물은 불신 죄인들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 세상사람들의 비참하고 무시무시한 종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받습니다. 조금도 틀림없이 심판하시는 날카로운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심판하고 정죄하여 무서운 진노를 내리는데 그 모습이 포도주틀을 밟아 피가 튀도록 하는 진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관점에서 복된 죽음과 비참한 죽음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와 찬송속에 조용히 죽음을 맞이 하는 성도의 죽음은 참으로 복된 죽음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관점에서 끔찍한 죽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온 몸이 찢어지고 분해되어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수습하기 전에 도로에서 거적으로 덮어 놓아지는 광경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새들과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저주받은 죽음이 있습니다. 그 죽음은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아합은 피를 흘리며 죽었고 그 피를 개들이 핥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악한 왕비였던 이세벨은 성에 떨어져 죽었는데 그 피과 말과 성벽까지 튀었고 나중에 예후가 그 시체를 수습해주라고 허락했는데 이미 개들이 시체를 다 뜯어먹고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남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라는 선언이 나옵니다.
새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가장 저주받은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은 죽음을 말합니다. 
17절은 한 천사가 공중에 나는 새를 향하여 와서 하나님의 잔치에 모여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는 끔찍한 표현이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새라고 하는 영화가 공포영화의 백미로 꼽히고 있는데 새떼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새 떼들에 의해서 시체의 모든 살점들이 뜯겨지는 죽음이 있습니다.
18절은 이 저주받은 죽음이 누구에게 오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죽음은 모든 불신자들을 향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세상에서 차별되도록 힘있는 계층 부유한 계층 지식계층이 있지만 불신자라는 한 모두 그리스도와의 전쟁에서 죽임당할 것을 말한다. 즉 사단의 무리와 그리스도의 군대의 전쟁은 그리스도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을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탄자 즉 그리스도의 입에 나오는 검인 말씀에 그들은 예외없이 정죄되고 죄의 형벌인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도구입니다. 말씀대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기에 죄인들은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기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 때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잡히고 산채로 유황이 불붙는 못에 던지울 것입니다.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으로 짐승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에는 모슬렘으로 기독교를 적대하는 세력이 십억이 넘습니다. 통일교의 세력이 전세계적으로 확장일로에 있다고도 합니다. 불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미혹하던 종교입니다. 조로아스터교와 힌두교 그리고 별의 별 종교들이 거짓 단체들이 온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대만에는 집마다 조상신을 섬기고 관우 장비신상이 있습니다. 내년에 선교지로 기도중인 인도는 신들의 숫자만 수억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핍박하는 세력은 그것이 국가 권력이든 이단단체이든 거짓선지자이든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기독교인 성도들을 미혹하는 모든 거짓선지자들, 세계에 퍼진 모슬렘교와 불교와 통일교와 모든 이단들은 예외없이 다 심판받아 불붙는 유황불못에 던지운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진노를 받을 수많은 영혼들을 건져내기 위한 노력을 힘써야 합니다. 이는 마치 폭우로 급격히 불어나 쏟아지는 계곡물에서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육체를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한 진노의 포도주틀에서 밟히는 것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새들의 먹이가 되는 비참함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던지 못얻던지 이 진노의 포도주틀에서 튀는 피를 생각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인내로서 극복하며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