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매우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 도망자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다윗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이 함께 했습니다.
더군다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 빚을 진 사람, 가난한 사람, 집도 없어서 거할 곳이 없는 사람,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마음이 힘겨운 사람들, 즉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22:1~2)
다윗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큰 형 엘리압의 태도를 아실 겁니다(삼상17:28~30).
형제 간의 그런 갈등은 이제 사라지고 온 가족이 똘똘 뭉치게 되나니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윗도 힘들고 어려울텐데 상처 받고 힘들고 고통당한 자들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한 이들은 불한당이나 조폭들처럼 악한 일을 도모하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상처받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넉넉함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비아달과의 만남입니다.
사울 왕은 도엑이라는 에돔인 신하를 통해서 아비멜렉 대제사장이 다윗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울은 제사장들을 다 몰살하라고 명령하였고 극악한 도엑은 팔십오 명의 제사장들을 죽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한 사람인 아비아달이 아둘람 굴로 도망하여 다윗에게 이르게 됩니다.
다윗은 구사일생으로 도망 온 아비아달에게 말합니다.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22~23절)
다윗을 그렇게 넉넉하고 큰 사람으로 만든 것은 바로 광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만들었던 아둘람 공동체의 넉넉함과 의리와 끈끈함을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다툼과 갈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아둘람 공동체가 깨지고 분열되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수는 더 늘어났고 후에 다윗을 돕는 용사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아둘람 굴 안에 모여들었던 가난하고 외롭고 억울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하면서 치유되고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둘람 굴 안에서 다윗과 함께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작은 교회의 목사인 나도 아둘람 공동체를 닮은 아둘람교회를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