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까지"

by 이도수 posted Aug 20,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님께서 애굽에 벌써 일곱 가지의 재앙으로 바로를 벌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자신의 완악함을 거두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로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출10:3) 바로가 그렇게 교만하므로 애굽에 메뚜기 재앙을 내릴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바로의 신하들도 “어느 때까지” 모세가 우리의 함정이 되어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낼 것을 바로에게 강하게 요청합니다.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출10:7) 그러나 바로는 신하들의 요청을 거부하게 되면서 메뚜기 재앙으로 애굽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립니다. 메뚜기 재앙이 임한 후에 바로는 정신을 차리고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메뚜기가 사라지자 바로는 그 완악함을 굽히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애굽의 바로처럼 완강하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교만을 꺾지 않고 끝까지 교만한 모습으로 계속 살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망을 당하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 세상적으로는 그들이 잘 되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재앙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빛이 세상에 왔지만 악한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 믿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결코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돈 잘 벌고, 좋은 차 타고, 화려한 집에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아도 배 아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성공과 인기가 그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것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실패와 어려움이 그들에게는 나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그들에게 실패와 좌절이 없는 것이 큰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언제 까지 입니까?” “어느 때까지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불신하고 대적해야 합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믿지 않는 부모, 형제, 자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도 교만과 어리석음과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안타깝게도 “어느 때까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간의 갈등을 어느 때까지 해야 합니까?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순종을 통해서 회복하고 힘을 얻을 가장 기본적인 장소로 허락하신 공동체입니다. 가정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그 삶이 힘겨워집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네 몸처럼 사랑하라”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니 귀히 여기라”고 남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편 여러분, 어느 때까지 행하지 않고, 어느 때까지 순종하지 않으렵니까? 아내는 남자보다 더 연약한 그릇입니다. 아무리 여자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나가서 일하고, 힘도 쓰는 것 같지만 남편보다 더 연약한 그릇입니다. 깨지기 쉬운 존재이므로 귀하게 여겨주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말하거나, 손찌검하거나, 하녀 부리듯이 대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남편이 돈 벌어다 주고, 재력이 있고, 힘이 있어도 아내를 경히 여기는 것은 스스로를 경히 여기는 것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부부간의 대화도 안하고 그렇게 살렵니까? 어느 때까지 그렇게 등 돌리고 지낼렵니까? 어느 때까지 잠자리도 안 하고, 부부 관계도 안 하고 살렵니까? “애들 다 크면 그 때보자” “그 때 가서 내가 당신이랑 사나 보자” 아내에게 이런 마음 갖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내 여러분, 어느 때까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시렵니까? 사회 생활하면서 남자들이 많이 고달프고 힘듭니다. 이리 저리 치이면서 살아갑니다. 사표를 던지고 싶어도,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만 두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딸린 처자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밖에서 치이고, 깨지고, 욕 먹고, 상한 마음을 집에서라도 풀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집에 왔는데 아내가 바가지 긁고, 짜증내고, 소리지르고, 돈만 달라고 하면 남자들은 어디 가서 위로를 받습니까? 잘못하면 집 밖에서 돈 내고 위로 받으려고 하다가 사고 날 수 있습니다. 남편은 한 두 마디만 해주면 됩니다. “당신이 최고야” “당신이 잘 했어” “당신은 잘 할거야” 그럼 힘내서 남자는 온 몸이 부서지도록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자녀와 부모와 형제와 등 돌리고 살렵니까? 어느 때까지 직장 동료하고 말도 안 하고 있으렵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미워도, 싫어도, 맘에 안 들어도 등 돌리고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잘못을 했고, 아무리 심하게 대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형제가 서로 연합하고 동거하며 함께 하는 것이 아름답고 좋다라고 하십니다. 그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되 영생을, 즉 천국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용서하지 않고, 어느 때까지 용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살렵니까? 용서하는 것이, 용납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잘 되는 길이고, 내가 행복한 길이고, 내가 평안한 길입니다.

 

어느 때까지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으시렵니까? 언제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어느 때까지 지혜롭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시렵니까? 어느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려 놓지 못하고, 끊지 못하고 세상의 종으로 살렵니까? 숨 쉴만 하다고 끝났다고,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숨 쉴만하니까 또 옛날처럼 행하고, 숨통이 트이니까 그 시절을 교훈삼지 못하고 교만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안타깝게 여기실까요? 하나님이 회초리를 드시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합니다. 한 대 맞았으면 다시는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말씀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때로 우리는 반대로 하나님께 ‘어느 때까지’를 외치면서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대들기도 합니다. “하나님, 그럼 어느 때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하나님, 내가 어느 때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합니까?” “이런 것까지 참아야 합니까?” “이런 것까지 용납하고 기다려야 합니까?” “이제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어떤 분들은 “어느 때까지 이런 광야를 겪어야 하고,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언제까지 믿지 않는 남편을 참고, 바람 피우는 남편을 참고, 손찌검하는 남편을 참아야 합니까?” “믿지 않는 부모와 형제들을 언제 구원하시렵니까?” “어느 때까지 이렇게 돈에 눌리고 빚에 눌려서 살아야 합니까?” “어느 때까지 이 자식을 이렇게 힘들게 길러야 합니까?” “어느 때까지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합니까?” “그냥 죽고 싶습니다” “그냥 사라지고 싶습니다”라고 까지 합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어느 때까지 우리가 이런 고난과 아픔과 환난을 당해야 합니까? 언제 끝이 나는 것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언제 회복하실지를 묻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6~8)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습니다.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언제 나아집니까? 언제 회복됩니까? 언제 구원받습니까? 언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느 때까지 입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내게는 언제나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집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주님께서는 "너희의 알 바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할 바는 성령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그 때와 시기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때까지라고 질문하는 질문을 굳이 안 해도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다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 받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성령께서 주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