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받은 어마어마한 복을 아십니까

by 김세열 posted Sep 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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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영원한 복을 아십니까

계시록22:1-7절

어떤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처음과 나중만 읽어도 그 책의 내용을 다 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발단과 결말을 보게 되면 그 중간의 이야기의 전개를 대충 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장입니다. 이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장이 바로 성경의 마지막장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최후로 알려주는 메시지라고 할수 있습니다. 소설이라면 대단원의 결말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의 처음 석장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에덴동산의 사람과 사단의 등장으로 죄와 사망저주가 나옵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어야만 할 사건의 발단입니다. 그다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루어지는 전개입니다. 그 전개후에 위기도 있고 절정도 있습니다. 위기는 역사상 등장하는 사단의 역할을 하는 자들의 박해들입니다. 뱀과 아말렉족속과 애굽의 바로와 아달랴와 에스더서의 하만과 헤롯왕 빌라도등은 사단의 대행자들이었습니다. 절정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일 것입니다. 대단원은 요한계시록이며 그중의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세장은 피날레입니다. 20장의 사단과 사망이 멸망이 나오고 21장에는 새하늘과 새땅에 성도들이 나오고 22장은 생명나무와 생명수로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림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처음 세장과 반대의 구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는 단지 무한한 시간이 우연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윤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유한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니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마칩니다. 그 중간은 죄지은 인간의 죄를 구속하는 구원의 역사이므로 구원사라고 말합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데 그 끝은 해피엔딩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해피엔딩이냐 하면 성도들에게 해피엔딩입니다. 사단과 불신자에게는 언해피엔딩임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양과 규모에 대하여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새하늘과 새땅의  복된 삶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천국의 관한 내용은 계시인데 이것은 비밀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세상사람들이 이 천국을 모르고 이 복된 생활을 모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일평생 살면서 여러번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듣고, 성경도 알고 때로는 보기도 했습니다. 전도지도 엄청 많이 보았고 라디오나 방송을 통해 우연히든 의지적든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들은 것만해도 평생 수백 번의 정보는 더 들었을 사람들이지만 도무지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2:12 사도바울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 비밀을 당신의 백성들에게만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온 영인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는 진리의 영이며 가르치는 영입니다. 이 성령을 받은 자만이 영적인 비밀을 알 수 있고 천국과 지옥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과 지옥이 믿어진다면, 예수가 구주인 것이 믿어진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있는 것을 확신하셔도 좋습니다. 그 성령이 여러분에게 볼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즉 성령덕택에 우리가 신령한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받은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요한의 천국의 계시를 듣고 더욱 확신과 소망가운데 거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한이 본 천국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길 가운데 흐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의 에덴에는 비손이라는 강과 기혼이라는 강 힛데겔이란 강과 유브라데라는 강이 흘렀습니다. 그 강들에는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새하늘과 새 땅에는 수정같은 생명수 강이 흐릅니다.  왜 거리 한 편이 아니고 한 가운데였을까요? 한 가운데라는 흐르는 것은 중심에 흐른다는 것입니다. , 무엇이든지 중심에 있을 때 모든 곳에 골고루 수분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즉 생명수가 천국의 중심에 있어 전역에 풍요로운 생명을 공급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생명수의 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원지가 어디냐입니다. 창세기의 강들은 에덴의 발원지였지만 새하늘과 새 땅의 수원지는 바로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환상과 같습니다. 그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밑이 갈라져서 그 밑의 지하수가 샘같이 물이 스며나와 이것이 수원지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생명수는 이 세상의 물과는 다른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것의 실제적인 이 물은 생명을 풍성히 공급하는 물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뱅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말씀하셧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즉 생명의 성령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나와서 새하늘과 새 땅에 생명을 풍성하게 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사람들은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오감을 가지고 100체를 가지고 말하고 생각하고 하던 생명체가 한 순간 생명이 떠나면 흙이 됩니다. 어저께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잠자다가 생명이 떠나는 일이 많습니다. 걸어가던 사람이 차에 부딪히면 충격으로 생명이 떠납니다. 물에 빠져 호흡을 오래못하면 생명이 떠납니다.

이 생명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제는 흙덩이입니다. 그러나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사는 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확실한 것은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아담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생명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생명을 주시고 유지시켜주셨습니다.  그곳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인간의 하나님이 되시는 한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었습니다. 저주와 형벌이 있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었으므로 산 영이된 아담은 이제 영적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죄를 지은 순간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육체는 조금 더 살지만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쫓았습니다. 죄로 인간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죄와 생명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죄인된 인간이 어떻게 이 생명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중국의 진시황제는 죽지 않으려고 불노초를 구해 먹으려고 했다는데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불노초로 살지 못합니다. 의학이 발댤해도 죄인된 인간은 죽습니다. 진시황도 죽지 않으려면 불노초를 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사함을 받아야 할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생명은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가 없어야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 오십니다. 성령이 계시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려면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성령이 그 안에 들어와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이 여러분안에 흐른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이 세상에서 죽는다 해도 그것은 자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여러분안에는 생명의 성령이 계시므로 영생이 여러분에게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이 생명이 풍성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가 불사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이 본 이 생명수의 강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아주 특이하였습니다. 보통 나무들은 1년에 한 철 열매를 맺습니다. 올해는 결실기에 여름에 사과와 배들이 다 떨어져서 과일이 폭등했답니다. 사랑의 과일 나누기 행사가 잘 될까 염려도 됩니다.
그러나 이 새 세상에서의 생명나무는 열 두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실과를 매 달마다 맺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자연법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하면 열 두가지 다른 것은 얼마나 풍요로운 생명력입니까? 즉 절대적이고 풍성한 생명력이 하나님의 나라에 충만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두달 내내 생명의 결실이 풍성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여집사님이 유초등부 교사를 하는데 천국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니 어떤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선생님 천국은 참 따분하겠어요. 영원히 살면서 재미가 없을거예요" 그 아이의 말이 얼른 이해가 되었습니다. 처음이나 신기하지 오래있으면 천국생활도 시들해지고 말겠다는 뜻입니다. 고통도 슬픔도 없고 너무 평안하여서 너무 단조로운 생활일 것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합니다. 하나님이 천국의 생활에 따분함 지루함 지겨움 이런 것들은 전혀 없게 만들어 놓았으리가 믿습니다. 영원히 살면서 그런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은 고통이 없고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따분하지 않게 해놓지 않을까요?
저는 하나님이 참 신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나무에 매달마나 과일을 다르게 맺는 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재밌고 즐겁습니까?
1월에 배 2월에 사과 3월에 딸기 4월에 자두 5월에 레몬 6월에 바나나 7월에 수박 8월에 포도 9월에 밤 10월에 앵두 11월에 석류 12월에 복숭아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또 나무마다 이 순서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철마다 모든 과일을 풍성하게 먹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대표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천국의 생활을 이야기 하면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 무한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롯데월드에 가서 하루종일 놀면서 보아도 너무 아름답고 재밋고 신기하고 즐거워서 하루해가 너무 짧다고 더 놀자고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 좁은 롯데월드에 하루가 짧은데 온 천하를 말씀한마디로 지으신 하나님이 그 천국이 무료하고 재미없게 만들어 놓으셨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집을 지은 것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성을 단조롭게 돌로 지었습니까? 아닙니다. 최고로 화려한 정금으로 지었습니다. 정금만으로 지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양합니다. 그럼 보석을 섞었습니까? 예 12가지의 칼라가 다르고 모양이 다른 보석으로 기초석 쌓았습니다. 그것도 몰 잘라 문은 진주로 하고 길은 금으로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국을 무료하고 재미없게 만들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그리고 특이한 것은 그 잎사귀들입니다.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만국이라는 것은 모든 백성을 말하는 것이고 소성한다는 것은 고치고 치료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잎사귀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한 심령과 육체를 완전케 해주는 치료제가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나라에서 풍성한 생명이 넘치는 열매들을 먹고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같은 잎사귀를 마음것 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다시는 아픔이나 고통이나 사망이 없습니다.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전혀 없이 영생과 건강과 축복만이 넘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곳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저주가 없습니다. 그리고 밤이 없습니다. 저주는 하나님이 죄악에 대하여 진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이미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났고 더 이상 그 나라에는 죄악이 없기 때문에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또 밤이 없습니다. 밤의 의미는 어둠으로 상징되는 고통과 슬픔입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고통과 슬픔이 없으므로 밤이 없고 대신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늘 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천국에서도 잠을 잘까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천국에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직접적인 성경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추측은 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마 안 잘 것 같습니다. 왜냐면 밤이 없으며 또 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밤을 주신 것은 낮에 쌓인 피로로 인하며 모든 생물이 쉬고 안식하여 피로를 풀게 하기 위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은 피로함이 없습니다. 그곳의 삶 자체가 안식입니다. 오래 살수록 피로가 없고 힘이 남습니다. 날마다 새힘이 넘치고 강건합니다. 풍성한 생명력을 먹는 즐기는 일입니다. 따라서 따로 시간을 내어 쉬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신령한 몸이 쉬지 않아도 풍성한 힘을 얻으며 극도의 즐거움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국에 있는 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보면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도 하나님은 동산을 거니시며 아담과 대화하시고 교제하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밤도 있고 빛을 비춰어야 될 어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죄를 지어서 하나님에게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즉사했습니다. 죄인으로서 거룩한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도 하나님의 산에 올라올 때 일정한 거리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안에는 대제사장외에는 결코 들어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더러운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의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얼굴을 향하여 드는 것은 은총을 베푸는 행위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함께 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사는 삶이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성도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원토록 왕노릇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정말 그렇다면 한번 뿐인 인생 , 이 세상에 성공하기 보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드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 잘하셨습니다.

저는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복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나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세상에서 반드시 부자로 높은 자로 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염려로 가득차고 낙심하고 슬퍼하며 사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핍박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의 삶이 끝이라면 신앙생활은 무의미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쌍한 자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의 소망없이 이 세상에서 참된 천국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완전히 만족시켜주고 완전한 구원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는 천국의 맛을 보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와의 싸움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거룩한 근심과 죄감이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밤이 없고 저주가 없는 그곳입니다. 영광의 빛만이 가득한 그곳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그 이마에 이름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대하며 섬기는 곳 그러면서도 왕노릇하는 곳 이것이 실체입니다.

혹 글쎄, 이 천국의 묘사와 설교대로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하는 의심이 아직도 약간은 남아있습니까?
6절에 그런 분들에게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합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신다"
"그리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천국의 모든 증언은 신실하고 참되다 즉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이며 결코 되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속히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예언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을 믿고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환란이나 핍박에도 지지말고 믿음을 인내하여 지켜서 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씀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상상도 아니고 과장도 아닌 분명하게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신앙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인해 신앙생활하는 것을 유치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주님을 유치하게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계시한 것이니까요?  오직 고귀한 품성의 앙양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하늘과 새땅을 예언했습니다. 주님이 예언한 내용이 유치합니까?  이처럼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되고 결코 될 일입니다. 이 예언을 믿는 믿음을 여러분의 평생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나 고난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그 나라에서 왕노릇하는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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