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무엇하시겠습니까

by 김세열 posted Sep 2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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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계시록22:8-22절

성경이 어떤 책이냐라고 물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특성상 계시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
서 저는 성경을 비밀의 책이라고 비유하고 싶습니다. 감춰진 책입니다. 특히 요한 계시록은 비밀의 책
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특히 비밀이 많습니다. 그 중에 어느 것도 인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특
히 역사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세상사람들은 지금도 무지한 가운데 있습니다. 아직도 역
사의 끝이 없이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교인들은 윤회설을 믿고 있는데 그 역시
역사가 끝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돌 듯이 돌고 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되 어떤 종
교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부정하고 그냥 지상의 생활이 낙원이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
다. 그러나 대개의 수많은 사람들은 아예 죽음 이후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
고 싶어합니다.
"역사가 어떻게 끝나는 지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내가 관심있는 것은 오늘 주식의 시세와, 사
업의 성패와 주말의 레저와 자녀들의 일 뿐이다. "
이처럼 역사의 끝, 즉 주님의 재림해서 이 세상을 끝내시고 심판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관심있는 사람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종교를 따라 헛된 것들을 진리로 잘못 믿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관심도 없어하는 진리, 헛된
거짓에 속아온 역사의 종말에 관한 지식을 분명하게 깨닫을 수 있는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는 역사상 어느 시대인건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 특별한 소수에 들기위한 자격은 사
람에게 절대 없습니다. 그들 중에는 다른 사람과 구별된 만큼 착하거나 정의롭거나 지혜롭거나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고 평범하거나 오히려 못되고 못난 자들도 있
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복을 받습니다. 마치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받을 자격과 이유가 없음에도 특별한 복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문제들어갑니다. 이것을 두
자로 표현하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1 공의 2 중생 3 진노 4 은혜
정답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은혜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사람들
이 볼수도 없고 보아도 깨닫지 못할 비밀의 말씀, 특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의 말씀을 읽고 보는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함을 가지고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지: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8절에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보고 들은 계시를 보았다는 것처럼 자신을 강조하려는 것
이 아닙니다. 이 일은 내게 보이던 천사를 강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천사 역시 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계시를 받는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한 계시의 전달자가 중요한 것도 아니요,
오직 계시의 근원인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오직 하나님께 경
배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인물이나 어르신
들에 대하여 경의와 존경을 공경의 예를 갖추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옳은 일입니다. 훌륭한 신앙
의 선조들이나 목사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바울과 사도들을 흠모하고 존경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경과 경배는 다릅니다. 그들이 공경의 대상이되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특
히 죽은 자에 대한 경배는 정말 헛된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든 충무공이든 단군이든 우리나라의 큰 인
물들이 있지만 사당을 만들어 초상을 그려놓고 절을 하도록 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아니 다윗이나
바울을 위해 경배한다면 그것도 우상입니다.
대만에 선교를 갔을 때에 거의 모든 가정마다 관우 장비와 같은 영웅들에 대한 우상을 들여놓고 섬
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종류가 수만가지인데 일본도 너무 많은 신과 우상들이 집집에 넘쳐나
고 있습니다. 인도의 힌두교는 소와 같이 가축들도 신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은 죽은 조상들
을 대하여 명절마다 죽은 날마다 제사를 드리며 절을 합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창조질서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
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경배하는 것들이라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천사이든 귀신이든 가축이든 나무나 바
위와 해와 달이든 모두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지음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경배의 대상은 창
조주인 하나님외에 없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제쳐놓고 유한한 피조물을 섬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게다가 창조질서에 의하면 인간이 피조물중에 으뜸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인간에 의해
정복하고 다스릴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
다. 천사도 인간을 위해 수종드는 자입니다. 천사가 영력이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지 못했습
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중요한 면은 통치권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통치권을 위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인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려야 하고 관리해야할 왕적 제사장입니다. 왕이 신하에
게 경배하는 것이 무질서이며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상에게 경배한다면, 천사라 할지라도 어리
석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자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창조질
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제사를 단호히 거절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어
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미신적인 행위, 이를테면, 궁합, 점, 운세, 사주, 관상, 컴퓨터점, 오늘의 운세,
손없는 날,  등의 온갖 어리석은 일에 여러분들이 굴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
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다스리고 정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대지2: 속히 오실 주님을 깨어있어 준비하라
10절은 천사가 요한에게 이 책의 예언을 인봉하지 말라는 합니다. 그 이유는 재림의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곧 예언을 열어 시행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인봉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1절
의 말씀은 처음 들을 때 약간 의아하게 생각됩니다.
11절 에서는 악인들이 그대로 악을 행하게 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더러움을 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또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라는 말
씀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횡설 수설처럼 여겨집니다. 이랫다 저랫다 하는 것 같습니
다.
왜 그럴까요? 이 말씀을 이해할 때에 윤리적인 문제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긴박
함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더 이상 어떤 변화를 가져올 여지가 없이 급박하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주님의 재림이 속히 올 것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은 주님의 재림이 긴박하여 변화, 즉 회개의 때가 늦었으니 죄인들이나 악인들에게 복
음을 전파하기를 그만두라는 뜻이 되는가요?
사실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경전체의 계시와 모순됩니다. 이것은 종말의 계시가 드러났고 종
말이 너무 가까웠으므로 신속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너무 늦으니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빨리 주께로 돌
아오라는 반어법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도들에게 신속하게 죄인과 악인들을
전도하여 구원하라고 하는 강한 표현인 것입니다.
12절에서 주님의 말씀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인데 이것이 바로 11절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속히 오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실 때에 하신 말씀은 내가 속히 오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을 비롯하여 성도들은 자신의 생애동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승천하신지 60년이 넘어 이제 요한계시록이 씌여지는 때인 주후 96년경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 그의 사랑하는 자로 자처하던 혈기 왕성하던 젊은 청년 요한도 이제 백
발의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날마다 철새들의 울음과 철석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서 외롭고 힘겨운 인고의 세월을 지내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속히 오신다는 주님은 오시지 않
았습니다. 물론  승천하신 지 2000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지금은 주님이 승천하신지 2000년이 지났으니 우리는 주님이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 우리 인간
의 시간과는 전혀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2000년이 지나서 오실 것이면서 이렇게
속히 오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럼 왜 주님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긴박하고 급하게 살도록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해주셨을까
요? 그 이유를 생각함에 만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림을 예언하실 때에 이런 식으로만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얘들아 내가 지금 승천한 후에 재림하려면 적어도 한 2000년 이상은 걸릴 것 같아. 그러니 아
무리 어려운 핍박이나 환란 일이 있어도 내가 재림하여 도와줄 것은 전혀 생각도 말아라. 그리고
세상의 유혹이 있을 때에 내가 재림하기직전까지는 꼭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넉
넉하니 천천히 전도해도 되겠지? 그리고 너희 때에는 재림을 소망하지 말고 네 자손들에게 잘 이
야기 해서 한 2000년 지난 후손들부터나 재림을 기억하고 살라고 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2000년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앙생활이 제대로 될까요? 새하늘과 새 땅을 사
모하면서 살겠습니까? 그래서 환란과 핍박이 와도 이겨내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
고 정말 급한 마음과 열심히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겠습니까? 느긋하게 죽기
전에 믿으면 되겠지!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 인간들의 연약함과 간교함을 아십니다. 저는 그래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속히 온다는 뜻은  즉 빨리 온다는 것이 아니라 도적처럼 오겠다는 뜻입니
다. 빨리는 시간적인 의미이고 도적같이는 방법적인 의미입니다. 알지 못하는 때에 몰래 오시겠다는 뜻
이 더 중요합니다.  속히는 시간적인 의미보다 방법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속히라는 말은 주님의 재림이 내년일지 아니 내달일지 내일일지 모르고 언제든 가능성이 있다는 뜻
입니다. 속히 온다고 할 때에 모든 시대의 모든 지역의 성도들도 모두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속히는 1년이 되기도 하고 수 천년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에
건 주님의 재림을 내 생에 있지 않을 일로 단정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속히 때문에 누구도 잠자
지 못합니다.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성도들 모두 자신의 생애에 있을지도 모르는 주님의 재림 때문에 환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면서 이생의 고통을 이기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
니다. 또한 언제나 급박한 마음으로 전도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히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도적같이 오실 주님을
깨어서 기다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세상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
는 일이 없는 삶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향락에 빠져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술취함이요 방탕함입
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영적으로 둔감하게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깨
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죄와 의를 구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속히 온다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닙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아
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속히와 우리의 속히가 다를 뿐입니다.
그것은 정몽준씨와 저와 스케일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일천만원이 큰 돈입니다. 교육관
시설하는데 일천3백만원받았습니다. 신디사이저와 각양 음향기기만해도 7백만원이 넘었습니다. 그 천만
원 가슴에 넣고 다닐 때에 신경이 쓰여서 수시로 돈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혹시 내가 분실
하면 이걸 어떻게 물어야 되나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몽준씨에게는 천만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고한 개인 재산만 수천억이었습니다. 혹 일천만원을 잃는다고 해도 별 신경쓸 것 없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스케일이 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속히
와 인간의 속히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주님의 영원하신 분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님께 한낱 경점같습니다.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
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둘째로 즉 주님의 재림이 늦는 것은 스케일차이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림을 하루라도 늦추는 것
은 그 하루에 구원얻을 자들이 있기에 조금 더 조금더 하고 참으면서 구원얻을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참아 기다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늦는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성도들을 통하여 전도받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주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
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기서 모든 민족이란 구원받을 모든 민족을 말
합니다. 그 때 끝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받을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면 주님은 더 이
상 지체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구원이 완성되자마자 주님의 재앙들이 퍼부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늦다고 생각할 때마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 아직 남아있음을 기억해야합니
다. 재림이 늦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전도하지 않은 불신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가까
운 친구과 이웃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대지3;속히 오실 주님을 위해 행위를 준비하라
주님은 속히 와서 무슨 일을 하시게 될까요? 13절에 말씀하시는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즉 기쁘신 뜻대로 창조하신 주님이 이제 모든 것을 주권
대로 심판하시고 끝내시는 분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창조의 끝이며 역사의 종점입
니다. 모든 것을 마치고 판단하는 일이 있습니다. 즉 모든 인간들의 행위대로 심판하는 일이 있습니
다.
그런데 주님은 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예수그리스
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이것은 믿음있는 자는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구원얻
는 자들에게도 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성도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 믿어가지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해보고 세상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죽
는구만! 나도 나이 들어 늙을 때까지 세상에서 마음껏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믿고 천국가는 박
집사처럼 살았다면 더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저도 어려서 잘 모를 때는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늙어
서 예수믿고 천국가는 것이 더욱 이득일까요?
만일 구원만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어려서 믿어도 구원이고 죽기 5분전에 믿어도 구원받
아 천국가는 결과만은 동일하니까요?
그러나 천국에 가는 구원은 동일하지만 그 후에 받게되는 상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
니다. 어려서부터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받을 상과 평생 세상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믿고 천국간 사람이 받을 상이 같을 리가 있겠습니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할수 있는 내용이 고린도서 3장에 나오는데 바울은 전도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터위에
건축자와 같이 세운다고 표현합니다. 그 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위
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루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즉 우리가 주를 위해 전도하고 가르치고 한 것들도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과 짚의 6가지 공력
으로 구분되어있다면 우리의 일생 주를 위해 수고한 모든 노력과 헌신들이 하나님은 명확히 세분하여
구분하여 놓았음을 어찌 생각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일한대로 상으로 갚아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상은 획일적인 상
은 아닙니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결과를 내었는가를 따지시는 평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헌금에서 잘
나타납니다. 주님은 성전앞에서 연보궤에 헌금을 넣은 사람들을 보시다가 한 과부가 두렙돈을 넣는 것
을 보셨습니다. 두 렙돈은 지금으로 말하면 한 2-3백원정도의 작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 과부의 헌금이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과부는 전재산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헌금의 평가는 단순한 액수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형편에서 얼마나 드렸는가를 보시
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을 행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주신 환경이 다릅니
다. 달란트와 은사도 다릅니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요구하시고 적게 주신자는 적은 것을 요구하십니
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하루종일 일해야하기에 시간도 없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종
일 시간이 있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조금만 일해도 약한 건강으로 힘들어지치고 어떤 사람은 온
종일 일해도 힘이 남아돕니다. 어떤 분은 믿음의 가정에서 힘있게 교회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어
떤 사람은 불신집안에서 외롭게 신앙생활해서 교회일 하기가 너무 힘들어 합니다. 이처럼 모두가 가진
것이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남보다 봉사를 못한다고 걱정할 것없고 남보다 내가 더
많이 일한다고 결코 자만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진 것의 비례제로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것의 얼마를 드렸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것을 얼마나 충성되
게 봉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일한대로 평가하시고 반드시 상으로 보상하시는 심판자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
니다. 여러분이 주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모든 것뿐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하는 모든 말과 행동까지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보상하신 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게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예수
의 피로 그 옷을 희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용서함을 받아 의롭게 되는 것을 말
합니다. 그들의 복은 무엇이냐하면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17절에서
표현된대로 하면 값업이 생명수를 받아 목마름이 없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헤를 받으면 하나님나라의 생명나무의 열매
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열매는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된 성에 들어가서
영광을 누리며 사는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너무도 큰 기쁨의 삶입니다. 늘 만족하고 풍요로운 삶입니다. 이것
은 주님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은 불신자에게는 성밖에서 내쳐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시간이지
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다시없는 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은 승리입니다.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곧 광명한 새벽별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온 우주의 통치자로 등극하시고 새하늘과 새땅에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 성에서 사는 것으로 끝납니다.

여러분!
천국은 이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맛볼 수 있습
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느끼는 천국은 불완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의 모든 상상을 동원하여
행복한 조건을 충당한다 해도 새하늘과 새땅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한
자가 있다더라도 천국에서의 행복과는 비교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세상에서 우리는 늘 천국처럼 삽
니까 사실 우리는 잠간 그렇다가도 곧 다시 실패하고 지옥맛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새하늘과 새땅의 천국은 실패가 없는 완전한 영광의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 세상에 살되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에게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라고 권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환란과 손해를 당할 때에 천국의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할 자들이어야 합니다. 자주 비교해보라고 말씀하십시오. 마치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른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식시장에서 좀더 돈이 되는 주식을 사고 팔기 위해 주식의 가치
를 비교하고 또 비교하고 계산하고 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열심히 계산기를 찍어 보시라고 말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어떤 방식으로 손익계산을 해보아도 세상과 천국은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가장 큰 환란과 핍박을 당한다 하더라도 천국에 영광에 비하면  가볍고 약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재림을 소망합니까? 재림후에 있을 여러분의 상을 기대합니까? 기대해야 합니다. 기대가 없
다는 분은 상을 위한 일을 더 하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만이 시험을 기다립니다. 히브리
서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
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래서 여러분
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아멘 주 예수여 오서 오시옵소소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