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하나님의 구원 능력

by 김세열 posted Oct 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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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능력인 복음

로마서 1:1-17
오늘부터 저는 앞으로 로마서를 설교하려고 합니다. 로마서는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성경중의 한 권입니다. 만약 성경 66권중에 한 권만을 선택하여야한다는 가정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를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로마서는 특히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서보다 복음에 대하여 훨씬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제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종교개혁을 한 마틴루터는 이 로마서 강의를 하면서 불같은 확신후에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화형대 앞에서도 자신의 확신을 철회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로마서에 얻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에 대한 확신때문이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서는 신약의 주요부분이며 가장 순수한 복음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로마서의 내용을 한 단어 한 단어 읽을 뿐 아니라 암송할 가치가 있고 매일 영혼의 일용할 양식으로 집중적으로 섭취할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칼빈은 로마서 11:36절의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을 확립했습니다.
또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대 신학자는 로마서 13장을 읽을 때 변화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여자들과 놀아나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톨레 레게 톨레 레게" 즉 집어들고 읽어라는 가사였답니다. 그말을 듣고 성경을 들어 읽은 부분이 바로 로마서 13장 부분이 나온 것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그 말씀에 충격적인 감동을 받은 어거스틴의 변화되었고 위대한 신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로마서는 위대한 신학자요 신앙의 인물이 루터와 칼빈, 그리고 어거스틴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로마서를 강해하는 동안 저와 여러분도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먼저 로마서는 바울이 약 3차전도여행이 끝나가는 57년경에 고린도에서 쓴 로마교인들을 향해 쓴 장문의 편지입니다. 그럼 바울은 왜 이런 긴 편지를 썼을까요? 우리가 무슨 편지를 쓸 때 편지를 받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또는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용기, 화목의 내용을 적을 것입니다. 또 승진이나 합격같은 기쁨을 가진 사람에게는 축하의 내용과 앞으로의 번영 등을 기원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대상에 따라서 달라지며 그 대상이 처한 환경에 따라 편지의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로마서를 이해하려면 당시 로마 교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당시 로마는 대제국의 수도로서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매우 부요했고 외교와 무역의 중심지였으므로 세계각지에서 몰려온 잡다한 종족들이 사는 있었습니다. 그 중 유대인들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전쟁포로나 상업으로 온 유대인들과 로마인들과 같은 이방인들중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된 성도들이 모여 자체적으로 교회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교회에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함께 섞여있었는데 마찰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체계적으로 복음에 원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은 비록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긴 했지만 구약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방인 교인들에게도 구약율법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릇된 율법주의 적인 신앙관을 가진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성도가 구원받게 된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다는 복음을 강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이방인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방종에 이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이방 풍습과 생활습관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으며 또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성도들에게는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런 행위가 구원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부단히 힘써야 할 것과 속히 구습에서 벗어나 성화될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또한 추가적으로  대외적으로 로마교회는 로마정부의 세속권력에 대해 순종문제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레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윤리적 의문들을 가르치기 위한 동기로 로마서를 보낸 것입니다.

1절에서 7절까지는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의 인사말입니다. 7절에 보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것은 우리말로 그동안 안녕하세요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란 것과 같은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인사말가운데 자신의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1. 바울처럼 복음의 사람이 되자
그런데 바울은 자기의 소개를 하는데 3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종이고 둘째는 사도라 부름받은 자요, 셋째는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소개할 때 무엇을 소개합니까?
어떤 사람은 학벌을 소개합니다. 서울대를 나오고 어디 대학원의 박사를 지냈다. 그의 관심과 자랑은 학력과 지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몸을 자랑합니다. 건장한 체구에 늘신한 몸매와 잘생긴 얼굴, 를 가지고 있는 000, 그의 관심은 외모에 있고 건강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자랑합니다. 어느 회사의 이사이며 어는 재단의 고문이고, 또 어느 단체의 상임위원, 등등. 자신이 주로 내세울 것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압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무엇을 소개합니까? 이름과 나이와 취미 특기 그리고 가족관계입니다. 어떤 학생은 하나님의 아들 000라고 소개했습니다.  사람은 벌써 영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여기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울에게 있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은 자라는 것이라 믿습니다. 수많은 사람중에 복음을 위하여 구별하여 놓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지금 복음을 소개할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의 초점은 종의 겸손을 소개하려는 것도 아니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권위를 내세워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이 참뜻이 아니므로 종과 사도는 모두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예수님의 종이며 보냄을 받은자라는 뜻입니다. 종은 종인데 어떤 종이냐 하면 복음을 위한 종이며 보냄을 받은 것을 복음을 전하도록 보냄받은 것이고 선택된것도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강조점은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것이 참으로 많은 자입니다. 혈통으로 뛰어난 유대인이요 학벌로도 최고의 학벌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시민권도 로마시민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이었기에 복음과 관련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사말중에 벌써 복음의 내용이 뛰어나오지 않습니까? 그가 복음을 시작 하고 본격적으로 전하는 것은 16절과 17절에 요약하고 그리고 18절부터 8장까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벌써 인사말속에서도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절에는
복음은 성경에 미리 약속된 것이다.-즉 갑자기 튀어나온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복음이란 아들에 관한 것이다. -2절과 아들에 관하여 , 9절과 그 아들의 복음,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언급합니다. 3, 5절을 정리하면 복음은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복음을 설명할 때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복음의 내용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핵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리적 속죄입니다. 죽음에 인간의 죄용서함이 있습니다. 부활은 죄용서됨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하심의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다윗의 혈통, 즉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신비가 복음의 근간입니다.
5절처럼 예수로 말미암아 은혜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직접 부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거쳐서 쏟아부어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와 옵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도 언급합니다.
복음이란 모든 이방인에도 주어지는 것이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5절)
구약시대의 은혜는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게만 부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종과 학식과 차별없이 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속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바울은 복음에만 온 관심과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개할 때도 복음이 나오고 인사말에도 복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찌르기만 해도 복음이 입으로 나오는 자가 되었습니다. 6절에 보면 로마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이 가능케 했습니다. 우리들도 역시 로마교인처럼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가 되었습니다. 역시 예수님의 복음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복음의 은혜에 어찌 감사와 감격없이 무감각하며 살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그렇게 냉랭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없는 교회가 있을 수 있을까요?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감격이 식은 교회를 찾기는 어렵지 않고 복음의 감격이 식은 성도를 찾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막연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로마교회에도 복음에 대한 확실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복음과 관련하여 우리들은 무엇이라 소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복음으로 인해 생명과 삶의 의미와 기쁨을 얻고, 그 복음을 전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복음의 제사장인 김 세 열,

바울은 로마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없이 믿음의 생겨 온 세상에 소문이 난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에는 복음의 원리를 오해함으로 많은 마찰과 갈등이 있는 것도 알았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지 로마교회로 가서 그래서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견고케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이방인처럼 복음으로 인한 열매들을 맺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번 가고자 했는데 길이 막혔다고 합니다. 즉 사정이 생겨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복음의 원리를 마음껏 가르치고 복음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싶은 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바울에게는 빚이었습니다. 갚아야될 마음의 빚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안하고 불편하여 늘 그 빚을 청산해야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데 안돼니 할 수 있는대로 편지라도 우선 써서 보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 모두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함께 복음에 대해 점차 감격하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감격이 뜨거워져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으로 여길 수 있는 열정이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할수 있는 대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전도하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그에게 찾아가서 밤낮 복음을 전하고 그게 안돼면 전화하고, 또 안돼면 편지보내고 복음이 적힌 선물보내고, 컴퓨터 통신에 이메일로 띄어놓고 복음전도지를 그집 대문에 붙여놓고 몰래 코트 주머니나 가방에 전도지 넣어두고 하는 열정이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왜 복음을 설명하면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요? 복음에 무슨 부끄러운 요소가 있었나요? 아니면 당시의 복음을 접하고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부끄러워 했다는 말인가요?

로마는 당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로마의 해군은 지중해와 해상권을 장악했습니다. 로마의 법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세계를 그물망처럼 연결시켰고 로마의 화페는 경제가치를 지배하였습니다.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헬라어를 제치려고 등장했습니다. 대단한 파워와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능력의 로마인들은 자신의 철학과 지혜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그 고상한 철학으로 수많은 이론과 학문을 발달시켰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복음은 로마의 변방에 있는 식민지에서 시작된 비천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복음은 벌거벗겨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란 자의 부활과 믿음로 인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가장 악독한 범죄자의 사형법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아는 로마인들입니다. 십자가란 말만 들어도 기분 나빠하며 밥숟가락을 놓았다는 로마인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고상한 구원이 그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 예수에게서 이루어진다니,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은 자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니 이처럼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일이 세상에 더 있을까? 그것도 선행을 하거나 공부하여 높은 지식을 쌓거나 하는 것없이 단지 믿기만 하면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고.! 이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대우를 받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괜히 부끄러워하고 주눅들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마지못해 전하는 기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한다라고 외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외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고상하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그럴 듯하면 무엇합니까? 우리에게 구원줄 수 없는 수많은 이론과 철학과 능력들이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로마의 철학이 당시 아무리 지혜롭게 보이고 고상하고 심오해도 그것들이  무더기로 연합하여 평생 한 영혼에게 덮어씌운다해도 결코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무능력이었고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어떤 처녀가 남자를 사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둘 다 의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한 의사는 아주 키도 크고 얼굴도 미남인데다가 가문도 좋은 부잣집이었습니다. 더구나 마음씨도 착한 부잣집 청년이었습니다.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흠이 있다면 의사로서의 실력은 돌팔이였습니다.
다른 의사는 정반대였습니다. 외모라곤 도저히 볼품없이 키도 작고 얼굴은 험악하고 못생겼으며 가난한 집의 8형제의 장남에다가 성격까지 모가나서 비뚤어졌습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실력만큼은 뛰어나서 인정을 받는 자였습니다.
여러분 누구랑 결혼하겠습니까? 아마 대개는 전자와 결혼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죽을 병에 걸려 생존확률이 희박한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칩시다. 누구에게 수술을 받겠습니까? 그 때에도 의사의 얼굴이 잘생겼나 보고, 의사의 집안 보고 성격을 따집니까. 그래서 당신은 너무 못생겼내요. 수술 잘생긴 사람으로 바꿔주세요요. 당신은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째째하다면서요. 게다가 치사한 성격도 있다면서요. 그런 성격을 가진 당신에게 수술받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요. 담당 바꿔주세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의사가 곰보고 미련하고 괴퍅하다러도 내 죽을 육체의 병을 고치는데 최고의 능력있는 의사를 불러주세요. 간구할 것입니다.
그 무슨 고상하고 잘생긴 것이 있습니까? 고치는 능력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모와 내용이 그럴듯하고 고상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구원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세상의 수많은 능력이 있습니다. 돈의 능력도 있고 미모의 능력도 있고 지식의 능력, 지혜의 능력, 권세의 능력, 그러나 이것들은 하나도, 아니 모든 능력을 다 합쳐서 용을 써도, 죄에서 구원하는 것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무능력인 것입니다. 전세계의 능력을 다 모아다 수십억의 생명중 가엾은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부끄러워 보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는 복음은 다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는 능력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차별없이 동일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아야 될 사랑하는 이가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십시오. 복음이 어렵더라도 세상의 말로는 한 사람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었는데 인간이 되신 분,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어 속죄하셨고, 부활하여 구원을 이루신분. 믿기만 하면 구원하시는 분. 이게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복음만 전하십시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 복음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까?
그 해답은 바울은 17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복음안에 하나님에게서 나온 의를 나타냈다.
여러분 죄인이 구원받으면 어떤 신분이 되면 될까요? 쉽게 말해서 죄인은 죄값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형벌은 사망입니다. 육적인 사망 영적인 사망 영원한 죽음입니다. 죄인이 이 죄의 형벌을 면하려면 어떤 자가 되어야 할까요? 바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습니까? 의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구원의 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롭게 되기 위해 연구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정확히 지키자는 것이 유대인들의 의를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철학자들이 그랬습니다. 어떤 자들은 고행과 수련으로 의롭게 되려고 했습니다. 이방종교에서 그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의 법에 따라 나름대로 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의는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의의 기준에 못미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의 의는 될 수 있을지언정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의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하나님의 의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안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너무 쉽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합니다. 정말 믿기만 하면 구원받냐고 되묻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믿기만 해도 되냐고 합니다.
소풍때마다 가슴설레게 하였던 보물찾기를 아십니까. 제가  보물을 숨겨놓았습니다. 그 보물은 오히려 너무 당연하고 쉬운 곳에 감추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귀한 보물이 그렇게 쉬운 곳에 있으리라고는 지레 짐작하고 찾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아주 어려운데 힘든 곳만을 뒤지며 헛수고를 합니다. 결국 보물을 찾는데 실패한 그들은 너무나 쉬운 곳에 보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억울해하고 항의합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내 맘대로 보물을 숨겨놓는 것이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숨겨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왜 그렇게 부끄러운 방법이냐 왜 하나님의 의를 그런 복음안에 담아놓았느냐 항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간단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복음안에 나타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힘들고 어려운일은 다 하셨으니 너희는 믿기만 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을 얻는데에는 믿음 외에는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입니다. 전적인 믿음뿐입니다. 그 의는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의롭게 여기는 방법을 복음안에 담아놓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죄를 대속하여 죽고 부활하게 하고는 죄인들로 하여금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오직 믿음으로, 믿음에서 믿음까지 믿음로만, 행위가 아니라, 율법을 지킴이 아니라. 철학과 고상한 지혜가 아니라, 의롭게 여기고 구원하는 방법을 복음안에 담아놓았습니다.
복음이 구원의 능력입니다. 복음만이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구원얻은 것은 여러분이 예배를 드려서도 아니요, 착해서도 아니요, 봉사해서도 아니요, 결코 그 무슨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죄용서받고 구원얻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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