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더군다나 그 죄악을 감추기 위해서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까지 죽이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
하나님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악을 보면서 나를 업신여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나 자신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빤히 보고 계시고 아시는데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뿌리치면서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범죄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범죄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리이다”라고 꿈과 그 해석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삶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범죄함은 여호와의 원수인 사단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14절)라고 하면서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단에게 빌미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죄악은 사단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다른 범죄를 짓게 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범죄를 덮기 위해서 다른 거짓말을 하거나 또 다른 범죄를 하는 빌미가 됩니다.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서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죄를 덮기 위해서 거짓말과 또 다른 죄를 범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사람에게 또 다른 범죄를 하도록 빌미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정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고백과 같이 사단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롬7:2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러므로 예수를 믿을 때에 사단은 결코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