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도 은혜입니다.

by 김세열 posted Nov 0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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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중에는 학창시절에 무서운 선생님의 과목에 숙제를 안해가서 마음을 졸였던 기억
을 가진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가끔은 숙제검사를 안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날은 너무 너무 재수 좋은 날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내가 숙제를 안해 간 날 숙제검사
를 하고, 그날 따라 선생님의 기분이 나쁘면 그것은 최악의 경우입니다. 손바닥에 불이 나
도록 매를 맞습니다.
그런데 숙제검사를 해도 어느날의 선생님은 기분이 좋아서 '좀 잘해'하는 말로 그냥 그치
고 맙니다. 이날 역시 마음이 평안합니다. 마치 죄용서받은 죄인의 심정이 그와 같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그날 기분에 따라
넘어갈 일도 부모님이 저기압이면 어느 날은 아주 심하게 야단을 맞습니다. 부모님의 기
분이 고기압이면 무사통과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공의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와
친분있는 사람은 관대하고, 기분이 좋으면 관대하고, 뇌물을 받으면 굽어지고, 공의롭게
판단할 수 없는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일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른 체한 죄와 경배의 대상을 바꾼 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
님을 알되 모른 체한 죄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바꾸어 우상과 피조물을 경배하는 바
꾼 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반드시 진노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죄와 상관없는 거
룩하신 분이며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는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
님의 속성이란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쫓아가는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본성과 같이 하나
님이 반드시 가지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진노하신다는 것에 여러분 무섭고 슬프게 생각되십니까? 그러나
그 하나님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안전한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이 죄악이 만연하여도 죄
에 진노하고 판단하는 검찰과 경찰의 공의의 집행이 없다면 선량한 시민들이 얼마나 고
통을 당할까요? 그럼에도 억울한 일들이 많은데 하물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공의의 판단이 없다면 온 세상은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고 억울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겠습
니까? 죄에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
하여 하늘로부터 쫓아난다고 선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이때 진노가 하늘로 쫓아 나타나나니의 동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은 하나님의 진노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으며 끊임없이 그 진노가 임하고 있다는 뜻입
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로 나아오기를 원하시지만 죄인들이 끝
내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고 고집을 부릴 때는 반드시 무시무시한 진노를 내리시는 것입
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마음속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오늘날도 매일마다 불의와 불경건의 죄를 향해 진노하고 계신다면, 오늘날 세상의
악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형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
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위의 현실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말 진노하신다는 증
거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 안 믿는 수많은 불신자들이 성공해서 부자로 살며, 으리으리한 집에 좋은
차를 몇 대나 굴리며, 주말마다 여행 다니면서 맘껏 즐기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들중에 사
업에 성공하고 몇 개의 회사를 굴리는 부자도 많고, 정계의 거물이 되어 눈짓만으로 비서
들이 정렬시키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에 불행한 사고가 닥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가족 모두 너무나 건강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자녀들도 너무 똑똑해서
시험을 치뤄도 합격해서 일류대에나  일류회사에 잘 들어가고, 결혼도 멋진 남자, 이쁜 색
시 얻어 잘먹고 잘만 삽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뭐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매일 진노하신다고 하는데 도무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이들에 대해 진노하신다는 성
경 말씀이 사실입니까? 김일성도 장수하다가 죽었습니다. 문선명같은 통일교주도 지금 떵
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일까요?"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사랑을 받는 자녀라 하면서 오히려
그 삶은 고난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인들중에 많은 사람이 아직 가난과 어려움에
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죽
을 병에 걸려 죽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는 약 40%가 예수를 믿지만 대부분 혹독한 굶주림과 가뭄
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대상을 잘못 찾아 내려서 정말 진노
하실 악인들에게는 진노를 안 내리시고 복을 주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노를 내리신
것 같은 일이 이 세상에는 많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이 죄악많은 세상에서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정말 오늘날도 진노
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성경은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왜 우리는 그 진노에 대하여
의문하나요?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노와 하나님의 진노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성격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진노는 쌓아놓았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성격이 있는 무시무시한 진노
입니다. 롬 2:5절을 읽어 보십시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에게 매일 매일 짓는 죄와 악들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마
음에 숨긴 모든 은밀한 죄까지도 철저히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그 때 그 때 당장 
진노로 심판하시지 않고 쌓아두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날을 정해두셨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모든 죄마다 쌓아둔 진노를 한
꺼번에 무섭도록 쏟아붓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중에 학생이 잘못하면 그때 그때마다 매를 가지고 손바닥을 때리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철저히 지적해내고는 매를 때립니다. 그래서 행실이 불량한 학
생들은 거의 매맞지 않는 날 없이 일년을 보냅니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은 잘못해도 그 때 그 때 때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를 기억하고 있
습니다.  어떤 한계점에 다다르면 마치 폭발하듯이 휘둘러 대걸래자루가 부러지도록 후려
패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런 선생님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참고 참았다가 그에 대한 화
를 한방에 터뜨리는 타입의 선생님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성격과 비슷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인에게 진노를 쌓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죄를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빠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다 심
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가르쳐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
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무심코 하는 작은 죄악된 말, 거짓말, 위선말, 아첨의 말 분노의말,
비판의 말, 한담의 말  등의 작은 죄까지도 쌓습니다. 아니 우리의 마음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올랐던 죄악의 정욕들에 대하여도 철저히 쌓습니다. 그리고 그 쌓은 모든 진노가
터지는 것입니다.

오래전 여름인가요 지리산 계곡에 폭우로 홍수가 나서 거친 황토물이 개천을 차고 넘쳐
흐를 때 많은 주위의 피서객들과 차량이 쓸려내려가 목숨을 잃은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비유하면 이와 같습니다. 이 황토물들이 거대한 댐에 모여듭니다.
점차 점차 댐의 수위가 높아갑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고여 마치 바다처럼 많아졌습니다.
수천억톤의 물이 계속 밀려들어와  차오르도록 댐은 물을 방류하지 않습니다.  댐의 한게
수위를 넘어 이제 댐이 무너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댐은 수문을 열지 않습니다. 엄
청난 물이 계속 밀려들어와 더 이상 댐은 버틸 힘이 없습니다. 그 순간 이 땜을 송두리째
무너뜨려버립니다.
그 가공할 만한 파괴력은 삽시간의 온 산지와 수십개의 마을을 휩쓸고도 남음이 있을 것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쌓았다가 한꺼번에 쏟아 붓는 성격이 있습니다. 마치 저
격수가 목표물을 발견해도 사정거리안에 들어올 때까지 발사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정
적인 때에 급소를 겨냥하여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처럼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
시 무시합니까?

둘째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은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24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고 시작됩니다. 즉 모른체 한 죄와 바꾼 죄를 지
었으므로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데라는 접속사입니다. 진노란 무엇이냐하면 저
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고 말씀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악인에게 벼락을 내리시든지 갑자기 암병이 들게 하
여 죽이던지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게하거나 즉사하게 하든지, 사업이 부도나 알거지
가 되게 하든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직통 심판이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하나님의 진노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예로서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바로 염병이 들게 해서 죽게 하시기도
하고, 불뱀을 보내 물어 죽게 하시기도 하고, 지진이 일어나 땅속에 생매장하시기도 했습
니다. 또 탐욕부린 게하시나, 교만했던 요시야왕에게는 문등병의 진노를 내리셨고, 신약시
대의 거짓말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당장 죽이셨고, 헤롯왕은 충을 먹여 죽이시기도 했
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수많은 악인과 죄인들이 이런 직통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은 아닙
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오늘날도 직통심판일 수 있습니다.  죄인과 악인을 죽을 병에 걸리게 하
거나 교통사고로 사업의 망함으로 진노를 표출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숫
적으로 보면 아주 작은 비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내어버려두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24
절에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뿐 아니라 26절에도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기록되어 있고 28절에는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라고 기
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과 악인들이 잘못할 때마다 즉통
으로 진노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그런 더러움과 부끄러운 욕심과 상실한 마음가운데 내
어버려 두는 것이 진노입니다. 

비유를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난지도의 쓰레기더미장에 가보셨나요? 지금은 그 자리가 하늘공원이 되어서
참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개발이 되기 전에는 서울의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는  대
단히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시절에 외교관 관사의 모든 잡역을 하는 아르바
이트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쓰레기가 실린 덤프트럭을 타고 난지도에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난지도로 쓰레기를 버리러가면 온갖 잡동사니 썩은 쓰레
기가 마치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음식찌꺼기들이 있고 설상
가상으로 대소변을 처리한 휴지도 있습니다. 이슬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그야말로 썩은 물
이 사방에 흐르고 질퍽질퍽한 그야말로 지옥의 썩은 구덩이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차를 타
고 가다가 저 멀리 난지도 입구 이정표가 보이면서부터 벌써 차 창문 사이로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악취가 들어옵니다. 그 틈새로 파리들이 함께 날아들어옵니다. 사방 수백미
터 아니 수킬로미터 넓이로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루고, 골짜기를 만들고, 길을 만들었습
니다.  덤프트럭에서 쓰레기를 쏟은 후에는 트럭에 남은 것들을 수작업으로 끌어내어 버
리는 일을 해야했습니다. 한 5분동안의 수작업에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만일 그 안에서 하
루종일 견뎌야만 한다면 온갖 더러운 병균들로 인해 살이 썩어가고 코가 마비되고 허파
에서 악취가 배일 것 같았습니다. 위장은 뒤틀릴 것입니다.

자 이런 난지도에 만일 어린 아이가 놀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아이는 온갖 쓰레기를
뒤지고 다니며 온통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쓰레기 속에는 깨진 유리와 날카로운 철들이
많이 있어서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온갖 부패되고 병균이 득실거리는 음식들이 널려있
습니다. 그 부모가 어린 아이를 그 곳에서 나오라고 소리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는 싫다
고 합니다. 그 속에서 노는 것이 재밌다고 하면서 고집을 피웁니다.  부모가 그 쓰레기 더
미로 들어갑니다. 쓰레기에 빠져가며 아이에게 다가갈 때의 부모의 구두와 옷도 쓰레기로
더러워집니다. 그리고 아이의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그 손목을 붙잡고 데리고 나옵니다.
자 이 부모는 왜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 자녀를 때리기 까지 하면서 그 쓰레기장에서
건져내려 합니까? 그것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온갖 더러운 곳에서 있다
가는 다치고 병들 위험이 높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때려서라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만일 어린 아이를 미워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어 버려두는 것입니다. 더러움 속에 그
냥 놔두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 맘대로 노니까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는 곧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유리조각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상처난 곳으로 각종 병균으로 감염되어 썩어가는 파상풍을 앓고 말것
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때려서 데리고 나오는 것이 은혜입니다. 반대로 그 아이를 그 쓰레
기 더미에 방치한 채 내버려두는 것이 진노입니다. 

하나님이 경건치 못한 자나 불의를 행하는 자를 그냥 더러움에 내어버려두는 것이 가장
무서운 진노의 행하심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욱 부끄러운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적입니다. 성적 타락에 빠지는 데 동성연애가 그 현상입니다. 여러분 동성연애
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로 내어버려둔 자들이 그 마음에 갖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
고 있습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근수근, 비방, 미움, 능욕, 교
만, 자랑, 악, 부모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
그들은 하나님이 있어야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있어야할 공
간을 비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그래서 공허한 마음속에 이
런 모든 악을 마음에 채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 모든 악들을 하나님
의 있어야 할 자리에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입니다.

진노받을 자들의 특징은 그들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면
서도 이 일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 일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하며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의
악을 타인도 범하게함으로서 자신의 죄를 보편화하고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이것이 바로 진노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짓자마자 당장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은 오히려 죄악 중에 거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진노를 내리십니다. 그래서 그가
더욱 처절하게 죄를 짓고 욕심가운데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발현입니다.
불의를 짓고 그 마음에 온갖 악을 품고 살도록 내어버려두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에 대해 분노를 쌓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섭게 진노를 퍼붓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표현된 그 최후의 진노는 마치 포도주틀에 포도를 넣고 짓밟아 터트려 붉
은 즙을 내듯 죄인들을 짓밟아, 그 피가 넘쳐 수백 킬로의 거리에 온통 피바다가 되는 무
시무시한 진노였습니다.  벌겉게 달궈진 용광로처럼 시뻘겉게 이글거리는 지옥의 불길속
으로  내동댕이 쳐진는 진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악인과 죄인이 형통하고 아무 일 없이 잘 산다고 결코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
다. 평안하다고 해도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는 중이며 그들의 죄악은 하나
님의 진노의 잔에 쌓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별 문제 없는
형통한 삶을 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다고 부러워하거나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
그들은 지금 하나님이 내어버려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히려 예수 안믿는 자들이 형통하고 잘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안타깝
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노중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 세상에
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가능성이 있는데 형통하면 하나님이
없는 줄알고 계속 죄를 지으면서 예수님 안믿고 살다가 저 세상에서 정말 영원한 진노를
받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사업이 망하고 건강이 나쁘고 사고가 생기면 진노중에
서 은혜중으로 바뀌는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
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더 진노를 내리셔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더러
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혔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님
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내리실 진노를 예수님께 대신 퍼부어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보호 우산아래 있는 것이
며 예수님의 날개 밑에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환란날의 피난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없습니다. 그리스
도인인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은 결코 무작정 내어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그 때 그 때
우리를 징계하시기는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진노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때
로 병들고 실패하고 가난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지 진노가 아닙니다. 
마치 쓰레기장에 버려두지않고 회초리로 때려서도 집안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대로 불신자와 악인들이 형통해도 그들은 하나님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
기 바랍니다. 진노를 쌓고 있는 중이며 반드시 진노를 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깨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자마자 모
든 죄를 용서하시고 진노를 내리지 않기로 하신 은헤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혹 예수 믿은 후에도 때로 잘못하고 죄를 짓더라도 용서하시며 성령님게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 마음을 감화하사 고 더욱 악을 짓지 않도록 양심을 찌르며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진노에서 벗어난 은혜가 복음의 핵심인 것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행복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