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이 서로 다른 것을 봅니다.
그만큼 사람마다의 삶의 자리도 다릅니다.
삼하19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각각 다른 성격과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성격과 기질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말년에 다윗은 왕으로서 너무나 사사로이 행동했습니다.
압살롬이 죽은 것 때문에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한 백성들에게 불안과 불편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위축되어서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에게 흠이 잡히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1~7절).
요압은 왕을 협박하기에 이릅니다.
왕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왕이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압은 자신의 자리를 과도하게 벗어났습니다.
다윗도 요압도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31~39절).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로글림에서 왕을 배웅하기 위하여 요단에 왔습니다.
바르실래는 여든 살이나 된 늙은 사람이었고, 아주 부자였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이 마하나임에 머물러 있을 때, 왕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바르실래에게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강을 건너서 예루살렘으로 갑시다. 그러면 내가 그대를 돌보아 드리겠소”
그러나 바르실래가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제 나이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제가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나이가 여든 살입니다. 저는 먹고 마셔도 맛을 모를 만큼 늙었습니다.
저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노래를 해도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늙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저는 왕을 모시고 요단 강을 건너기는 하겠습니다만 그 상은 거두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다시 돌아가서 제가 사는 성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부모님의 무덤 가까운 곳에서 죽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제 아들 김함을 데리고 가셔서 왕께서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다윗 왕이 대답했습니다.
“김함을 데리고 가겠소.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김함에게 해 주겠소.
그리고 그대가 내게 원하는 것도 다 그대에게 해 주겠소.”
바르실래는 노욕 없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궁전에 함께 있게 하겠다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디서 죽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의 자리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신이 자리를 잃어버리고 다른 곳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업하던 사람이 정치한다고 하면서,
열심히 직장 생활하던 사람이 다른 일 한다고 하면서,
자신만의 소리와 색깔을 가지고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이슈입니다.
여러분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아내의 자리, 아빠의 자리, 직원의 자리, 목사의 자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치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