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by 정보영 posted Feb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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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저는 가난한 집의 9번 타자로 어머니 46세인 준 할머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당연한걸까? 자연스런걸까? 모유는 저에게 일용할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우유, 분유, 이유식,.. 이런 단어는 그 당시에 사전에서 조차 있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누님 젖도 가끔씩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밥물에서 누룽밥이 나를 살리는데 일조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룽지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어머니는 밥대신 누룽밥을 먹는 저를 마음 편하게
바라 보실수가 없으셨습니다.
(아마도 옛날 모든 어른들은 누룽지를 천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님에게는 누룽지를 절대 안 주려고 합니다. 누룽지는 어른들이나 남자들 모르게
뒤편에서 여자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누룽지만 있으면 수저는 자연스럽게 밥을 외면하고 누룽지 쪽으로 갑니다.
잠시 누룽지를 생각하며 희생과 헌신이라는 작은 단어가 생각납니다.
맛있는 밥을 만들기 위하여 자기는 가장 뜨거운 밑바닥에서 속을 다 태우며
인내하는 누룽지!
누룽지! 너가 있기에 윗부분에 밥이 한층더 맛을 내는지 모릅니다.
나도 누룽지처럼 저 낮은 곳에서 타는 아픔으로 모든 이웃이 맛을 내며
살수 있게 섬기는 삶이고 싶습니다.
작은 희생. 헌신!으로 예수님께서 가장 큰 헌신으로 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써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의 6시간! 가장 큰 값진 헌신이었습니다.
최소한 누룽지처럼 좋은 식탁에는 못 오르지만 그저 남의 유익을 위한 작은
삶이고 싶습니다.
구수한 맛을 내며 누룽지라는 아주 작은 겸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코의 자극을 주며 시선을 끌지만 결국은 밥그릇에게로 돌려주고
좋은 식탁 밑으로 숨어버리는 누룽지처럼...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된 누룽지 같은?
바나바도 바울을 위하여 준비된?
누룽지! 누룽지처럼이고 싶습니다.
좋은 맛을 내는 밥을 위하여 자기를 다 태우며 헌신하는 누룽지.
밥알은 다칠새라 사알살 주걱으로 공기에 담고 오늘도 누룽지는 잔인하게
긁고 또 긁어서 떠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없이 헌신하는 누룽지처럼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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