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세러머니

by 이종오 posted May 22, 200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빠! 감자탕 내가 쏠께"
"왠 감자탕?"
"어버이날 이브 세러머니지"

봄비가 마치 여름 폭우처럼 쏟아지던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날 보다 서둘러 퇴근하던 제게 초등학교 5학년된 큰 아들 녀석이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돌아오는 날이 어버이날이라서 저녁은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자신들이 쏜(?)다며  어디쯤 오고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큰아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수화기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아들의 목소리 또한 자신들이 계획한 거사에 한껏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그 시간에 전 내부순환도로 홍제문 터널 입구에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한 시간이 5시 30분, 보통 날 같으면 20분이면 도착했을 홍제문터널 입구에서 본 시간이 6시 35분, 그러니까 다른 날 보다 3배나 정체가 극심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내린 장마같은 폭우가 정체를 가중시키고 있었고, 때마침 퇴근시간에 몰려나온 차량들로 내부순환도로는 한치없도 내다 볼 수 없을정도로 혼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틈 없이 차창에 퍼붓는빗줄기를 닦느라 윈도우 브러쉬만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체가 계속된다면 예배시간까지 교회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들들과 통화를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제 안식구와 통화했습니다. 아빠와 엄마에게 어버이날이라고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을 한 12살된 큰아들과  8살된 작은아들의 대견해 하며 우리부부는 전화상으로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기뻐하던 중에 전 조용히 안식구에게 우리 가족 모두 함께 교회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전 제 안식구가 망설일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그랫듯이 '당신만 다녀와' 할 줄 알았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다는 이유로,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또는 아들들의 이런저런 일로 항상 그래왔듯이'다음에 갈께' 할 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부탁한 그 시간에는 봄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그런저런 연유로 본다면 제 안식구가 또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제 안식구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애시절까지 교회 잘 다니던 남편이 12년전부터 갑자기 교횔 다니지 않게되자 그 참에 자연히 멀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최근1년사이에 다시 신앙을 회복하려고 하는 남편을 그냥 두고 보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물론, 제 안식구는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특별히 반대하지도,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는 정도쯤입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고선, 전 늦지 않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주께 교통마저 정리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전 7시 40분쯤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정체가 심했는데 말입니다.

" 새식구를 소개합니다. 이종오 형제... 어디 계시나요?"

조현삼 목사님이 절 부르셨고, 전 제 안식구와 두 아들과 함께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형제 자매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희 가정을 향했습니다. 광염교회의 식구된 저희 가정을 축복해 주시던 모든 성도들의 그 따듯한 눈길과 박수소리를 잊지 못하겠네요. 또한 그 박수와 환영속에서 함께 박수쳐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셨을 하나님의 환한 모습 또한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기도 했구요.

이 날을 위해서 그동안 몇달동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혼자 등록하기 보다는 우리 가족 모두 주님께 등록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입니다. 저 혼자 그렇게 몇달을, 가끔 작은 아들과 함께 주께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주께서 더 소망하셨나봅니다. 제 서툰 기도보다 먼저 하나님이 응답해주셨으니까요.

설교 말씀을 통해 목사님께서는 제 안식구를 저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며 모든 염려와 근심마저 내려 놓으라 하셨습니다. 아멘하며 전 그 말씀을 꿀꺽 삼켰습니다. 저보다 더 안식구를 사랑하는 주님이신데, 저보다 더 제 안식구를 위한 계획과 비젼을 갖고 계실 주님이신데,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 인것 같습니다.

몇달전 목사님께 메일로 저희 안식구를 위한 제 마음을 열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형제부터 먼저 하세요'라고 답을 주셨답니다. 전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구요.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며 저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주께서 응답해 주실줄 전 정말 바라보지 못했었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들에게서 어버이날 세러머니로 받은 저녁 대접의 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그날부터 시작된 제 안사람과 하나님과의 만남 역시 아내와 저와 그리고 우리가정에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입니다. 어버이날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제 평생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날 우리 아들들이 우리를 위해 대접한 음식이 바로 감자탕이었구요.

이후로 안식구와 함께 기쁜 마음이 되어 주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저보다 더 안식구를 사랑하시는 주께서 이미 제가 그런 소망을 품기전에 그 기도마저 이미 다 예비하셨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5월 7일 수요예배에 처음으로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렸던 이종오입니다. 저희 가정은 안식구 신지현, 큰아들 정우, 작은 아들 건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