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by 이도수 posted Mar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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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간의 시리아 난민 사역은 쉽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까지 거의 매일 왕복하며 

몇 개로 흩어져 있는 난민 캠프를 다니면서 구호를 진행했습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단장 조현삼)에서 가져온 3천 만원의 구호금으로 물품을 현지에서 조달했습니다.

빵, 샌드위치, 속옷류, 양말, 물티슈, 여성용 생리대 등을 준비해서 난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구호품을 나누고 해가 진 후에는 구호품을 구입했습니다.

참 많이 나눴지만 더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품목들을 나누지 못한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나누고 섬겼습니다.

어떤 날은 점심도 거르면서 구호품을 나누기도 했고 

거의 매일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잠자리에 들기가 무섭게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오후에는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한 시내 외곽에 있는 숙소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스로 넘어오면서 몸에 폭탄을 맞아 장애가 있거나 간난 아이가 있는 극소수의 난민들은

유엔이나 그리스 정부에서 매우 열악하기는 하지만 호텔에 숙소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몇 일 후에는 수용소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든지 아니면 수용소로 들어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쟁과 고통을 피해서 도망쳐서 나왔는데 또 다른 절망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난민들에게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게 될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주일에 찾아 간 곳은 데살로니키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숙소로 난민 여덟 가정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이혼해서 두 딸과 간난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인과 그 동생 내외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폭탄에 손이 절단되고 다리를 다친 젊은이와 함께 나온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정은, 남편 이삭이 오스트리아로 이전에 난민으로 가 있는 상태이고

아내와 두 자녀(14살 딸, 11살 아들)가 한 달 전에 데살로니키로 넘어온 가정이었습니다.

이 가정을 위해서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큰 가방과 두 아이들의 가방과 남자 아이 옷을 사주었습니다.

내일(목) 남편이 오스트리아에서 그리스로 온다고 합니다.

김수길 선교사님이 우리를 보낸 후에 어떻게 도와줄지를 위해서 이삭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준비해 간 구호품을 나누고 함께 주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난민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고 우리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이야기하고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아래의 두 개의 글은 함께 간 우리팀 중에서 서울광염교회 김범준 집사님이 쓴 글입니다.

글을 클릭하시면 시리아 난민 구호 게시판으로 들어가서 글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글입니다


두 번째 글입니다


이제 몇 일 간의 시리아 난민 구호를 마치고 내일이면 이곳 그리스를 출발해서 돌아갑니다.

선교와 구호 현장을 몇 차례 다녀보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기억에 남는 곳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데살로니키 시리아 난민 구호도 평생 잊지 못할 사역이 될 것 같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



MJC_1033.JPG

 *구호품을 받은 후에 돌아가고 있는 한 난민 여인의 모습  <사진 모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