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by 박현덕 posted Jun 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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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후1:1-11

요즘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시지요.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우리는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다른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사랑의 하나님, 또 어느 때는 공의의 하나님,
또 치료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등등
우리는 일평생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부르지요.

또 다른 이름의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내가 또 한 걸음 성숙했다는 걸 말해줍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그 사람의 일생이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할수록 평안이 찾아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은 그 하나님의 많은 모습 가운데
특별히 위로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이 위로의 하나님을 이미 경험하였고
그 하나님의 위로를 얻으며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언제 우리가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까?
고난이 찾아올때가 곧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위로의 하나님을 만납니까? 
고난 당한 사람이 위로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고난이 없이는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난당한 것이 여러분에게 복이되는 건,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할 때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가 고민하지 마시고,
아 위로의 하나님이 날 만나기 원하시는구나하고 생각하며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위로를 받는다는 건 그 고난을 이겨낼 힘과
용기와 소망을 얻는다는 겁니다.
문제가 갑자기 해결된다고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더라도 위로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그 고난을 이겨낼 힘과 용기와 소망이 생깁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늘 이 위로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
언제나 힘과 용기와 소망을 지니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위로하심도 큽니다.
그러면 힘과 용기와 소망도 더 크겠지요.
고난이 클수록 더 감사하십시오.
그 고난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힘과 용기와 소망을
바라보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는 데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면서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만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병원에 입원한 것을 보면서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그런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제서야 그 고난을 이길 힘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무척 어려운 마음의 아픔을 이겨낸 시기입니다.
이처럼 마음아픈 과정을 이겨낸 후에 하는 첫 인사에 그는
위로의 하나님에 대한 찬송으로부터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는 찬송하리로다 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고난당하고 계십니까?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난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마시고
난 지금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어라고 고백하세요.
또한 그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한 이후에는
위로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은혜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내 고난을 이렇게 이겨나가게 해 주셨어라고
늘 고백하며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위로의 하나님으로
우리를 만나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두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로 살게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4절)

고난당한 사람이 고난당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건 그 고난을 이겨낸 후에
그와같은 고난당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은사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은사입니다.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 중에 그 고난을 예수로 말미암아
잘 이겨낸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세워줄 수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망을 주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새 소망을 주는 건 위로의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위로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고난을 예수와 함께 이겨낸 사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위로하며 사는 인생이시길 축복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고난을 만나고 또 그 고난을 이겨내면서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고난만큼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느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당하지 못한 고난에 대해서는 참 위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 데 그건 뭐냐면
예수를 만난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위로할 수 있습니다.
5절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모든 사람의 아픔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난당한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위로자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9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고난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런 경우보다는
고난가운데서 위로를 얻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다듬어가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스승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고난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큰 스승이 됩니다.

바울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으면 산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큰 사망에서  하나님이 건지셨다고 고백하며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위로의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서
위로자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길 축복합니다.

난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난 지금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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