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함의 은혜 (몽골선교보고)

by 이윤정 posted Jul 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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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25일 금요철야설교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2:1~20
제목 : 수고함의 은혜

  바울과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지역을 전도하기 시작했을 때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이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온 힘과 마음을 다 바쳐서 전도사역을 했습니다. 9절을 보니까 바울은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이전 전도지역인 빌립보지방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음에도 바울은 하나님을 힘입어 다시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도 그의 수고함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뜨겁게 수고하였으나 유대인들이 전도를 방해함으로 베뢰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그가 할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바울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이 교회를 향해서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시험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쓰러지면 어떻게 할까, 핍박과 환란을 견뎌낼 수 있을까, 믿음에 거할 수 있을까...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온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지키며,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가 한 모든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해주심에 감사했고, 다른 선교지들을 향해서도 비록 그가 얼마를 머물든, 사역이 중단되어 쫓겨났든, 어떠하든지 그의 수고함을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그 일을 의미없게 만들고, 하기 싫게 만드는 말은 “그것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은 수고한 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수고함이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가장 큰 복이되는 것입니다.

  2003년도 몽골선교를 준비하면서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에... 자꾸 마음 가운데 드는 생각이 이렇게 준비한 것이 과연 써먹을 데가 있을까, 환경이 다르면 어떻하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주시는데 자꾸 그것들을 하지 못할 만한 여러 가지 가정들이 마음 속에 들더군요.

  아침 기도회때에 간절히 기도하는데 아침 본문으로 이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1절 말씀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바울에게도 이러한 두려움이 있었지요. 그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수고하고 일하는 것이 헛됨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수고를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값지게 하셨음을 바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기쁨이 되었고, 보람이 되었고, 앞으로의 사역에 더욱 힘쓸 수 있는 에너지 원이 되었습니다.

  몽골선교의 일정을 마치고 난 후 몽골국제대학교에 계시는 양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일정을 무사히 마치셨나요?”라고 물으시더군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계획했던 것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놀랍군요. 몽골에 오면 계획대로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네... 몽골에서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시간도, 사람도, 일정도 어떤 것도 제때에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미리 세워놓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일정의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시고, 수고를 값지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수고함의 은혜라고 정했습니다. 수고함이 무슨 은혜입니까? 수고함은 힘든 것 아닙니까? 값을 치루는 것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수고함이 얼마나 은혜인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심고, 물을 주고, 농약을 주지 않으면, 그러한 수고함이 없이는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농부가 일을 한다고 해서 다 똑같이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농부가 수고하지만 농부가 수고하는 것보다 더 큰 수고가 행해져야만 풍성한 열매가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히 와야 하고, 땅은 그 영양분을 내어 씨를 트게 하고 씨에 영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사람이 아무리 개발해도 가능하지 않는 기적같은 따뜻한 햇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어떠한 농부도 치룬 적이 없습니다.
값을 치룬 적도 없습니다.
열매를 거둔 것은 농부의 수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수고로 열매를 만들어 낸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수고함의 법칙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수고함으로 열매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고함에 하나니믜 은혜가 임해서 열매를 내어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것입니다.
수확물을 주시고, 햇볕값, 바랍값, 비값 따로 떼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십일조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선심썼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혹 있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꽤 한심해보이실 것 같습니다.
  우리의 수고함을 은혜로 값아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수고함보다 더 크게 우리를 위해 날마다 수고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시고,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나니 몽골선교가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수고함을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더 많이 수고하고 싶어졌습니다. 더 많이 노력할 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생각하니 기쁘고, 기대되더군요.

  그리고 몽골선교를 떠났는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어처구니 없는 은혜들을 내려주셨습니다. 몽골의 만달이라는 지역으로 사흘간의 전도일정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유명한 동네랍니다. 몽골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역군수가 전도는커녕 예수믿는 사람들이 의료봉사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쫓아낸 지역이라고 해요.
학교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나쁜 말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곳에 3년전에 세워진 만달교회는 아직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연약한 가운데 몇 가정들을 통해서 매주 성경공부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전도지역으로 보내놓고 지역군수를 찾아갔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선물들을 들고 전도집회를 할 수 있도록 군수의 마음을 녹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오랫동안 기도해 온 제목입니다.
군수가 허락해야 전도집회도 가능하고 전도일정도 가능합니다.
마음을 녹여주세요. 녹여주세요.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다. 군수를 만나러 갔더니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하던 군수가 지난 겨울에 죽었답니다. 성백철전도사님과 제가 답사를 갔다 온 즈음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군수를 만나자고 했더니 지금 일이 있어서 며칠간 자리를 비웠답니다.
  딱 우리가 전도일정을 세운 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처구니 없이 기도를 응답하셔서 대대적인 마을전도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집회를 공식적으로 허락하지는 못하지만 말리진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마음껏 가가호호 방문하며, 노방전도에, 나아가서 외침전도, 스피커 전도까지 정말 하고 싶은 건 다 해봤습니다.
군수 마음 녹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기도응답을 하나님께서 해놓으셨더라구요.

  선교중에 우리의 수고함을 헛되게 할 사탄의 도전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첫째날 밤에 잠자리에 들기전에 마당에 나왔는데 갑자기 울타리 바깥에서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활활 타올랐는데 금새 발견한 몽골인성도가 불을 껐습니다. 힘들게 만들어간 플랭카드에 누군가 불을 놓았더군요. 울타리가 다 나무라 빨리 끄지 않으면 불이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회를 하고, 우리를 대적하는 이들을 물리쳐달라고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써간 플랭카드 앞부분을 띄어내고 뒷부분을 달고 다음날도 전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청년들이 온통 기쁨의 보고를 늘어놓았습니다. 한국의 날 행사를 했는데 350여명의 몽골인들이 왔어요. 마을 사람들이 3000여명이라고 더 되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1/10은 넘게 온 겁니다.

  다들 기쁨으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매님이 조용히 부르길래 나가보았습니다. 또 일이 있었더라구요. 누군가 뜰 바깥에서 돌을 던졌는데 네 개의 돌이 날라왔데요. 권오문선교사님이 누워계시는 차에 던졌는데 기가막히게 선교사님이 누워있는 머리가 피해서 맞은 겁니다.
어쩌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아... 어려움이 크니, 수고함이 크니, 은혜도 크겠구나.
역시나 다음날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가 컸습니다. 650여명이 넘는 이들이 전도집회에 참여했고, 큰 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옷을 나누어준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더 복음을 듣겠다고 남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고, 자세한 복음을 더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 안오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비가 그쳐야 말이지요.

  그런데 그 비도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참여한 형제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전하려고 아침 9시에 울란바탈에서 만달로 출발한 차가 해매고 해매다가 비 때문에 두 번이나 웅덩이에 빠져서 전도집회가 끝난 후에야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상으로는 전도집회 전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하나님께서 전도집회를 위해 비를 내려 차를 막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낙심되었지만, 형제의 몫까지 선교하겠다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는 지체들을 보면서... 이미 우리의 수고를 넘어선 하나님의 수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도집회 전마다 큰 비가 오네요. 나아가 마지막 전도집회 날은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그 날 우박으로 울란바탈에서만 10명이 죽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큰 비와 우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값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복음의 기적들은 복음의 씨를 뿌린 자들의 수고와 함께 하나님의 수고와 은혜의 열매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고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65장 23절에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된 자녀된 우리가 집을 세우면 우리와 함께 집을 세워주시고, 성을 지키면 우리와 함께 성을 지켜주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전 15:10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힘만으로 하는 수고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수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사랑과 힘으로 수고하시되 그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복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열매를 거두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내가 수고함으로 거두었다고 하지 마시고,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시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2003년 이번 여름 하나님께서 우리 서울광염교회에 수고의 은혜를 더하시고, 우리를 위해 크게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열매를 거두어 먹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