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무슨 일이

by 한정훈 posted Nov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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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삼하 22:1-2, 시편 34:1-10
제목: 동굴에서 무슨 일이

내가 인상 깊게 본 영화 중에서 도망자라는 영화가 있다.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인데 요즘엔 추석에나 설날에 TV에도 많이 나온 영화이다. 내용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이 그 누명을 벗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내용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때까지 끝까지 안 잡히고 도망간다. 스릴 만점 영화이다.

오늘 여기 또 한 사람의 도망자가 있다. 다윗이다. 그도 애매하게 누명을 쓰고 도망 다니고 있다. 사실 다윗이 이렇게 어려운 건 자기가 잘못해서 된 게 아니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것도 자신이 원해서 된 것도 아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도 단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싸웠을 뿐이다. 사실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다"는 말만 안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고생 안했을 것이다. 오늘 가드에 가서도 이 말 때문에 도망가야 했다. 

계속되는 고난에도 다윗은 낙심하지 않는다. 한번 두 번 되는 고난은 그래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고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약해진다. 다윗이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뻐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윗에게는 피난처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둘람 굴과 같은 피난처가 있었다. 사울의 군대에 쫓김을 받고 마음이 급해도 아둘람 굴에 들어가면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 긴장이 풀어지고 여유가 생긴다. 쫓기는 사람보다 더 마음이 조급해지는 사람도 없다. 빚에 쫓기는 사람, 한 순간도 발 뻗고 못 잔다고 한다. 근데 오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있음에도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오는 시험과 도전도 만만치 않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긴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안 좋은 이야기만 한다. 신문의 70%는 안 좋은 뉴스이다. 신문과 뉴스만 보면 은혜가 되지 않는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셔야지 신문으로 아침에 큐티하면 은혜가 없다. 특히 요즘은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많다. 사단은 우리의 소유한 재물로 먼저 시험하는 것 같다.

욥기 1장을 보니까 사단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하나님이 사단에게 묻는다. 네가 어디서 오느냐? 사단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이 말씀을 보고 놀랐다. 사단도 일을 한다. 예수님이 "아버지가 일하시는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여기보니 사단도 일한다. 그냥 땅을 두루 돌아다닌 것이 아니다. 사단은 넘어뜨릴 자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 것이다.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셨다. 사단은 오늘도 시험에 빠뜨릴 자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묻는다. "네가 욥을 유의하여 보았는냐?" 사단은 "그가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리이까?" 라고 대꾸한다. 이 말은 사단도 욥을 주의해서 봤다는 것이다. 사단에게 있어서도 욥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욥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사단은 욥을 시기와 참소의 눈으로 보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보신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를 시기의 눈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믿는 것을 시기하는 자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사단은 우리가 잘 믿는 것을 시기한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고 우리를 하나님께 고발한다. 우리는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 무장해제 해서는 안된다.

얼마 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초반에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미국은 최신형 무기를 총동원했다. 최정예 부대들을 다 투입시켰다.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이라크는 게릴라전으로 미군을 괴롭히고 있다. 얼마전에도 이라크 게릴라군에게 폭탄테러를 당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의 마음이 해이해 진 것 같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미국의 승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으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셨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으로 기뻐한다. 하지만 아직도 머리가 깨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를 넘어뜨리고 믿음의 길로 못 가게 막는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린다.

우리는 일이 잘 될때 마음이 해이해 지기 쉽다. 기분이 좋을 때 실수하기 쉽다. 특히 믿는 우리들은 은혜를 받을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마냥 기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파숫군을 세워야 할 것이다. 아둘람 굴에서 그들이 모여 있을 때 밖에는 보초를 세웠을 것 같다. 안에서는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었지만 밖에는 삼엄하게 보초를 섰을 것 같다. 사울의 군대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암호도 정했을 것 같다. 이쪽에서 '아둘람'하면 '400명' 뭐 이런 식으로 했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 교회로 치면 '광염' '감자탕' 이런 식이 될 것 같다.

그러면 아둘람 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첫째,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되는 일이 있었다. 다윗이 아둘람으로 도망가니까 가족들도 모였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에게 약간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릴 적 사무엘이 왕을 뽑겠다고 왔을 때 자기는 안 불러주고 형들만 불렀다. 마음속에 "나 아들 맞어" 이런 마음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풀어야 인생이 풀린다고 목사님도 말씀했지 않는가. 오늘 다윗은 아버지와 다시 관계를 풀었을 수도 있다. 또한, 환난 당한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빚진 자들이 모였다. 아마 그중에는 사울에 반대해서 핍박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실력은 있지만 시대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묻혀 지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윗도 가드로 도망갔을 때 미친 체까지 한 사람이다. 그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오늘 상처 입은 자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잘 알듯이 마음이 원통한 다윗이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이들의 장관이 되었다. 우리 조목사님도 가난이 큰 스승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가난해 보면 지금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가셔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신다고 한다.   

둘째,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예배가 있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시편 34편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한다. 같이 시편 34편 1-10까지만 읽어보자. 특히 8절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하셨다. 이것은 정말 도망자의 입에서 나오기 어려운 고백이다. 내가 이런 애매한 고난을 당하지만 여호와는 선하십니다.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할 것이다. 다윗은 정말 예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마음이 원통한 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셋째, 훈련이 있었다. 얼마나 동굴 속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다윗을 따르던 400명의 무리는 나중에 그의 군사가 된다. 전쟁도 같이 하게 된다. 그 속에서 다윗이 병법을 가르치고 무술을 가르쳤을 지도 모른다. 돌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 줬을 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아둘람 굴이 필요하다. 피난처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피난처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아둘람 굴이 되신다. 예수께로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

첫째, 교회가 아둘람 굴이다. 광염교회를 보면서 아둘람 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단 입구가 좁고 들어오면 천정이 낮다. 아둘람 굴도 400명이 들어갔으니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도 제대로 없다. 하지만 아늑하고 평안하다. 아침 기도회 때 기도하러 오면 동굴과 같은 평안함을 느낀다. 다윗이 있던 아둘람 굴에는 화장실도 남자 여자 구분 안됐을 것이다. 잠을 잘 때도 따로 구분도 없고. 우리 교회가 바로 아둘람굴이다. 마음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교회로 달려와도 좋을 것 같다. 여기에 관계의 회복이 있다. 치유가 있다. 예배가 있다. 훈련이 있다. 우리가 세상에 치여서 힘들 때 피난처가 되어 준다. 여기서 힘 얻어서 다시 세상에 나아간다.

둘째, 우리 가정이 아둘람 굴이 되어야한다. 하루의 일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 가정이 바로 동굴이다. 피난처이다. 우리의 가정이 또 힘들게 일해야 하는 사역지가 아니라 가정이 쉼터가 되기를 소원한다. 가정에서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있기를 축복한다.

셋째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동굴이 있어야 한다. 마태복은 6장에 보면 "네가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기도의 골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집안일도 많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니깐 말씀보고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그래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10분이고 있으니까 밖에서 남편이 “거기서 뭐해?” 라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에서 말씀보고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긴장 속에서 누리는 평안이다. 환난과 쫓김 속에는 누리는 기쁨이다. 오늘 힘든 일이 있는가? 광염 동굴에 와서 안식을 누리기 바란다. 우리 가정이 천국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