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음의 은혜(롬4:1-8)

by 이석진 posted Feb 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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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저와 같은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나갈 때는 아버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모든 가족은 선택의 여지없이 아버지를 위해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믿음이 있어서 나가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심방을 오고 함께 예배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한게 뭔지 아십니까? 찬송가입니다. 5절까지 있는 찬송을 부르는 날은 무척 짜증났습니다. 4절이나 3절까지 있는 찬송을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2절 혹은 3절부터 다시 부르자고 하면 도중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섬기고 있으니 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를 믿음으로 이 곳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단한 복입니다. 혹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여기에 왜 와 있을까 고민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혹 그런 분이 있다면 그 분은 대단한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놀랍고 위대한 일이 있을 줄 확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제 구원에 이르렀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며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이 되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 조건은 예수를 믿고 안 믿고 인데 과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하는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과 혹 상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까? 어떤 분은 부모님이 믿었기에 다른 상황이 없어서 교회 다니다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믿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 따라 다니다가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를 알게 되고 접촉한 사람들의 상황과 환경, 그리고 과정은 모두 다 다릅니다. 그러나 결국 공통된 것은 예수를 내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성경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를 말합니다. 2절에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창세기 15장 6절에 나온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tu서 하늘의 많은 별과 바다의 모래를 보라고 하시면서 네 후손을 이처럼 많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고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한 것이고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이것은 내가 하나님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킨 것은 혹 아닌가요? 그러나 그렇지 않고 “삯”과 “은혜”의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삯입니다.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까 당연히 구원을 주셔야 합니다. 삯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은혜를 말합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우리가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의롭게 하셨다는 말씀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여호수아 24:2을 잠시 봐야 합니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이 떠날 때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거기 임했고 아브라함은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떠난 뒤에도 좌충우돌 하는 장면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약속한 땅으로 가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내려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하면서 살기 위해 거짓말하는 모습 등을 보입니다. 그렇게 몇 가지 경로를 거치고는 하나님이 15:6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삯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를 이끄시고 그리고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치 우리가 구원 얻은 근거를 우리가 얻은 것처럼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삯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끄셔서 믿음에 이르게 해 주십니다. 즉, 우리에게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모든 경우가 다 동일합니다. 이것을 구원의 조건인양 우리에게 “네 믿음이 의를 얻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한 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느날 결정해서 한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때는 고통으로, 어떤 때는 희열로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어느 시점에 “난 하나님이 아니면 안됩니다. 난 그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셨나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함께 읽어볼까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