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by 이도수 posted Apr 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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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히브리어로 즉, 이스라엘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문화는 일원론이며 헬라는 이원론의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인들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섬기지만
헬라인들은 수 많은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다신교라고 하지요.

이스라엘인들에게 '들으라'고 하면 듣고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한국말도 엄마 말씀 잘 들으라고 하면 귀로만 들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잘 듣고 행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들으라고 하면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며
행하라는 말을 따로 말해주어야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원론의 문화에서 살던 헬라인들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신약에서는 들으라에서 끝나지 않고 행하라는 말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때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행하는 일까지 포함된 것이 그 단어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몸이 하나이요...성령이 하나이니
한 소망 안에서...주도 하나이요...믿음도 하나이요...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엡6:3-13)

믿음에는 행위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까요?
그럴 때에 요동치 않게 되며 예수님처럼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성숙되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믿는 것을 확신하여서 믿는데로 행할 때에 성숙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얻게 되는 삶의 깊이와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13-16절)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지는 온전한 사람이길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모습이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주님, 이 소원 들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