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듣고 싶은 말씀 '이제야 네가...'

by 이도수 posted Feb 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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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이 말씀이 아침에 마음에 깊게 자리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믿었으며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던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면서 그의 믿음의 행보는 시작됩니다.
물론 그 삶의 과정에서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던 경우가 더러 있습니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보아도 믿음의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보고 나서야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는 앞장서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연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한 것처럼 내가 아끼는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입니다.
내가 지금 아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자존심, 용서하지 못함, 편안함, 운동, 재물....등등
물론 때에 따라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입니다.
물론 말로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종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정말 행동할 수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서야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끼는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드리고 나니까 아브라함이 받는 놀라운 것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아끼고 있다가 드리지 못하면 받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끼는 것을 바칠 때에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는 독자를 바칠 때 경험해야 하는 아픔과 슬픔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잘 못하는 이유인 듯 합니다.
육체의 아픔과 피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존심의 무너짐과 수모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는 말씀을 듣고는 싶은데
그 과정의 아픔과 어려움은 별로 밟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요^^
주님, 그 믿음의 경지는 제게 언제나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아침에 이렇게 묵상하는 시간만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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