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복있는 자로 살아가노라(2)

by 이도수 posted Jul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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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한 말과 행동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죄를 짓고,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착하고, 선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다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권모술수하지 않아서 순수하고 맑다는 것과도 통합니다.
간사함이 없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시편에서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2)
제 소원 중 하나가 간사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는 별로 간사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아내를 보아도 그렇고, 교회 안에서 여성도들을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순수성과 맑은 성품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치수가 높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여자들에게는 꾸중보다는 따뜻하게 대하신 것을 많이 봅니다.
수가성 여인을 향해서도 그러셨고,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을 향해서도 그러셨습니다.
그 여인들은 분명히 더러운 죄를 지었지만 죄에 대한 고백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속이거나 포장하지 않아서 그 마음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고백하고 허물을 드러내는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간사가 없다는 것하고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간사해서는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면 됩니다.
물론 죄를 안 지으면 가장 좋겠지만,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 이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그것처럼 답답하고 힘든 것은 없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어린 시절에 이불에 오줌싸고, 유리창이나 그릇을 깨먹고 고백하지 않는 동안에
그 답답하고 안절부절하는 심정을 우리는 적어도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실수했습니까?
고백하면 됩니다.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6절)
죄에 대한 고백이 있을 때에 순수해지고 맑아집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원해 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에 대한 고백을 드릴 때 우리는 깨끗해지고 더욱 순수해 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결국 죄는 우리를 이길 수 없으며, 실패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를 지은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실수했고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 낯을 들 수 없습니까?
그냥 고백하면 됩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죄송스러워도 포장하면 안됩니다.
숨기고 포장하는 것은 간사한 것입니다.
간사함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정죄치 아니하십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복있는 자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