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by 이도수 posted Sep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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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기르시나요? 요즘 강아지, 고양이는 보통이고 곤충들, 다람쥐, 악어, 뱀 등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개를 예뻐해주고 교감한다고, 사람이 개가 되어서 개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개 집에 살아야 하고, 줄에 묶여서 지내고, 개 밥이나 뼈다귀나 사료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개들이 큰 잘못을 해서 당신이 개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형벌이 죽음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를 위해서 죽게 된다면 개죽음이 됩니다.


사실 비유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물인 개가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기 비하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즉 낮아지심과 순종하심과 자신을 주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순종하며, 교회 안과 밖에서 섬기는 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많이 알고 다른 사람들은 잘 가르치는데(?) 섬김은 소극적이라면 영적인 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이유는 예수님처럼 섬기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22: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이유도 내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방향을 바로 잡아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대접한 후에 인정이란 대가를 받으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대접을 했으면 거기까지 충분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서 대접한 후에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르다는 소중한 것을 놓쳤습니다.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를 서운하게 여기면서 원망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아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봉사하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공동체를 어렵게 할 수가 있습니다.


봉사는 단지 어떤 건물이나 장소에 정해진 시간에 가서 부과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서로 봉사하라(to serve others)고 했습니다. 봉사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봉사는 ‘사람’이라는 인격적 존재가 그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봉사는 성도를 향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와 설교로 성도를 섬기는 것이고, 교사는 공과 공부와 교제로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고, 찬양대과 성가대와 반주자는 영감 있는 찬양과 연주를 통해서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음향 엔지니어 봉사는 기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향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청소 봉사는 교회 건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깨끗한 바닥과 환경에서 예배하고, 성경공부 하고, 기도하게 하는 것이므로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안내, 교사, 주방봉사, 악기 연주, 사진 봉사 등 모든 봉사가 인격체인 성도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봉사 자체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쁨이 단지 바울만의 기쁨일까요? 나는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성에 가지고 오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껏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의 궤를 메어 왔습니다. 누구의 기쁨인가요?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의 기쁨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고 춤추는 것을 보고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기쁨과 백성의 기쁨에 함께 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봉사는 받는 성도에게 기쁨이며, 주는 성도에게도 기쁨이며,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봉사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더욱 넘치게 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