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의 결단

by 이도수 posted Aug 12,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길갈에 있는 사울의 군대는 3천입니다(삼상13장).
이중에서 2천은 사울과 함께 하고 1천명은 요나단과 함께 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으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혐오스럽게 여긴다는 소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게 됩니다.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싸우겠다고 사울에게로 모여듭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군사력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모자랍니다.
블레셋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그 숫자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습니다.
도저히 이스라엘이 당해낼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순식간에 삼켜버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몰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에 질려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고양이 앞에 도망갈 구멍도 찾지 못한 쥐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무기도 없고 병력도 없고 사기도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한 명씩, 두 명씩 전열을 이탈하는 군사들이 생겨납니다.
블레셋 군대가 두려워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웅덩이에 숨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서 멀리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사울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겁에 질려 오합지졸에, 군사들은 전열에서 이탈하는 수가 점점 많아집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르며 용맹함이 사자 같아도 블레셋과 싸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7일 후에 싸움터인 길갈로 오겠다고 약속한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와야 하나님께 제사를 하고 신탁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무엘의 제사가 있어야 흔들리는 백성들의 마음도 붙잡을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도 받아서 전쟁을 벌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사울은 기다리다 못해 어리석은 결단을 하고 맙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지고 오게 하고는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하고 맙니다.
사울의 실패는 하나님을 향해서 망령되이 행한 것입니다.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대적입니다.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주신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며 도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익이 있고 유익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할 때에 눈에 보이는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편법과 유행과 방법이 아무리 득세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손해보는 것 같고 당장 이익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내가 그 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그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울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좇다가 자신과 후손들이 망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왕을 주지 않으시고 그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사울의 또 다른 실패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는 길갈에서 사무엘을 통해서 주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그 때를 앞당겨버리고 맙니다.
불안하고 초조하니까 자신이 저질러버리고,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길갈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아주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수5:2~12).
사울이 길갈에서 블레셋과의 항오를 벌이기 약370년전 일입니다(BC 1410년경).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가 모든 장정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가나안땅의 족속들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무장해제를 했습니다.
가나안을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가나안족속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남자가 할례를 행하는 것은 싸움을 완전히 포기하는 무장해제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를 욕보인 세겜 때문에 세겜 족속을 전부 몰살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세겜 족속에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통혼을 하려면 모든 남자들이 할례 받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세겜의 모든 장정들이 할례를 받아서 전쟁 능력을 상실하게 한 후에
세겜의 모든 족속들을 죽인 사건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요단강을 건넌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해도 되는데 왜 하나님! 지금 저 가나안족속들 코 앞에서 해야 합니까?
반문할만도 한데 그러나 여호수아는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때였지만 말입니다.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일 뿐만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키실 것이라는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도 길갈에 설 때가 있습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무엇인가 빨리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꼭 지금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과 욕심대로 해버리고, 저질러버리고, 사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때가 있는데 내 생각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면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으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길갈에 서 계십니까?
사무엘이 나타날 때가지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시고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는 챤스입니다.
벼랑 끝까지 가는 위험한 상황이십니까?
여러분이 벼랑 끝에서 떨어져도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받쳐 주실 것입니다.
길갈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길갈의 결단이 힘들고 어렵고 납득할 수 없어도 행하시길 축복합니다.
길갈에서 믿음을 고백하시고 결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길갈에서 하나님을 풍성히 경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