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이길 수 없는 존재이기에...

by 이도수 posted Jan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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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길 수 없는 존재이기에...(삼하11장)

다윗은 이제 이방나라들을 무찌르며 더욱 탄탄하고 힘 있는 나라로 안정된 왕권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화친을 맺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또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다윗은 이제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고도 군대장관 요압과 그 부하들만 전쟁에 보내도 될 정도로 강력하고 입에 혀같은 군대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제 부하들에게 권한도 위임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마땅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들을 전쟁터에 내 보낸 후에 안일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저녁때에 자다가 잠이 오지 않아 침상에서 일어납니다. 전쟁터에 보낸 부하들 염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은 것인지 낮잠을 많이 자고 나서 밤잠이 오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왕궁 지붕 위를 거닐 던 다윗에게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목욕을 하는 그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그 녀를 당장 궁전으로 불러와서 밧세바를 범하고 맙니다. 그녀는 잉태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만 큰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한 여인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의 실수로 다른 남자의 부인에게 잉태하게 하는 당황스런 사건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영성이 깊고, 하나님께 들어가 앉기를 즐겨하던 다윗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여쭙고 물어보던 다윗이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편안하고 안도감에 빠졌을 때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10년간 사울왕에게 쫓기는 광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겨운 광야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방인과의 전쟁을 경험하였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어떻게 할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전쟁터에 있었던 다윗은 늘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궁에 있는 다윗은 굳이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눈 앞에 헤쳐나가야 할 광야도 없고, 전쟁을 벌여야 할 싸움도 없습니다. 너무나 한가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광야의 시간 중에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여유가 넘칠 때도 주님과 함께 즐기며 행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크고 어려운 일을 끝내고 나서 영적 약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신의 제사장들과 단판을 짓는 영적인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싸움에서 엘리야는 큰 어려움과 안타까움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큰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주일 밤과 금요일 밤에 텔레비젼, 게임, 스포츠 중계 등의 유혹이 있습니다. 이럴 때가 신앙 성숙의 기회입니다. 그런 시기를 잘 넘어서면 한 단계 더 성숙한 신앙이 됩니다. 성도들이 출장 중에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났고 안도감에 빠질 수 있는 때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잉태했다는 소식에 당혹함과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왕이지만 다른 남자의 아내를 범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다윗은 바로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쳤어야 했건만 오히려 죄를 덮으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자신의 충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옵니다. 하룻밤 밧세바와 동침하게 해서 잉태한 아이가 우리아의 자녀인 것처럼 위장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점점 치밀해지고 영악해졌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우리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군대장관인 요압이 전쟁터에 거하고 있거늘 자신이 편하게 먹고 마시며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 없다고 하며 집 밖에서 밤을 지냅니다. 다윗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날은 우리아에게 음식과 술을 잔뜩 먹이고는 집으로 들어가도록 강하게 유도해보지만 워낙 충성스런 우리아인지라 다윗의 술책대로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결국 충성스런 우리아를 죽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아가 차라리 대충 대충하는 신하였다면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충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충직함 때문에 오히려 우리아는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아를 깊은 전쟁터로 보내라는 전갈을 우리아의 손에 편지를 들려서 요압에게 보냅니다. 우리아는 그 편지가 자신을 죽이라는 내용인 것도 모르고 군대장관 요압에게 달려갑니다. 그 편지를 받아든 요압은 다윗의 뜻을 알아채고는 우리아를 깊은 전쟁터로 보내어 죽게 합니다. 다윗의 죄악은 멈출지 모르고 질주해 갔습니다. 여자를 품은 욕심은 사람을 속였습니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죄는 중간에 끊어버리고 돌이키기에 참으로 어려운 것을 봅니다. 죄에 빠졌을 때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난 여자의 눈에는 남편도 자녀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죄에 물들어 버리면 부모도 형제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죄의 속성은 이렇게 강렬하고 오염도가 진합니다. 죄는 그 농도가 짙어지면 짙어졌지 연해지지 않습니다. 한 번 시작한 죄는 그 맛을 느꼈기 때문에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죄는 묵상하면 안됩니다. 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입니다. 멋진 영화배우가 스크린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것을 보면 따라서 해보고 싶은 것이 순진한 우리 아이들입니다. 탤런트 아무개가 드라마에서 술 한 잔 마시며 고뇌에 찬 얼굴 짓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따라해 보고 싶은 것이 또한 우리 아이들입니다. 드라마에서 바람피우며 불륜을 범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은 건강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죄는 경험하면 할수록 무디어집니다. 죄는 보면 볼수록 유혹받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죄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을 보면 단계가 있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저것은 죄야,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합니다. 계속해서 그런 일을 보게 되면 바뀝니다. 이해하겠어, 오죽하면 저렇게 하겠어 합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재미있겠네, 해 볼만하겠어 합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나는 이게 무슨 신세야, 남 들 다 하는데 나만 안하고 있어, 나만 바보 인가봐 합니다. 죄를 범하면서 결국 합리화하게 됩니다. 죄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끊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차라리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도록 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첫 단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첫 단계에서 끊어버린 것처럼 끊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보디발의 부인이 상처받을턴데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상처받지 않도록 서서히 거절해야지 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됩니다. 죄의 농도는 계속해서 짙어집니다. 죄는 강력합니다.

더욱 강력한 성령의 능력 외에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 의뢰하고 물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본성을 가진 약하고 범죄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뛰어난 영성의 다윗조차도 큰 범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다윗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