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감동

by 이도수 posted Apr 29,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감동에 따라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삼하24장 1절을 보면 조금 이상한 듯한 말씀이 나옵니다.
1절 “여호와께서 …….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다윗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구조사를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온역으로 죽음을 당하는 재앙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감동시켜 놓고는 왜 그런 엄청난 재앙을 주신 것일까요?
감동시킬 때는 언제고 재앙은 왜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 속에서는 두 개의 마음이 싸움을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두 개의 감동이 싸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는 성령의 감동이며 다른 하나는 성질의 감동입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서는 성령과 성질이 싸움을 합니다.

그 싸움은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훌륭하고 충성스런 장수들이 많았습니다.
한꺼번에 창 하나로 적군 팔백 명을 죽인 장수, 삼백명을 죽인 장수.
사람들이 전부 도망칠 때에 도망치지 않고 블레셋 군대와 맞서 싸운 장수.
다윗이 심히 목이 마를 때에 위험한 블레셋 적진을 생명을 내놓고 뚫고 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온 세 용사.
사자를 죽이기도 하고 장대한 애굽의 거인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거인을 죽인 장수.

이렇게 대단한 장수들이 있으니 다윗의 교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있는 싸울 수 있는 모든 군사들을 세어보고 싶었습니다.
용맹하고 싸움 잘하는 군사들이면 하나님 없이도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다윗의 마음속에 성질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군사력을 세어보는 교만의 죄를 범하고 맙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그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욕심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다윗의 욕심을 바로 쳐서 꺾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윗은 로봇 밖에는 될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다윗의 자발적이며 인격적인 반응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것도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다윗을 감동시키셨다는 의미는 다윗의 성질을 그냥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다윗이 악한 교만의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냅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하다고 해서 하나님은 바로 꺾으시지 않고 우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결국 돌이키지 않으니까 더 잘못되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회초리를 드시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도 역시 그냥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면 강퍅하게 되어집니다.
성질의 감동에 사로잡히면 성령의 감동은 역사 하지 않으십니다.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자발적인 순종과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도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때로는 적극적으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안 되게끔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역사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고 외면했다면 바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가 모세를 통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고 외면했기 때문에
바로는 바울이 되지 못하고 바로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내버려두시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사실 하나님은 다양하게 사인을 주십니다.
바로를 찾아간 모세를 통해서 수도 없이 사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알리십니다.
하나님이 신 중에 신이심을 알리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라고 알리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인을 주십니다.
요압의 권면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인구조사가 얼마나 교만한 죄악인지
사인을 주셨습니다(3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감동하시며 사인을 주십니다.
하라고, 하지 말라고, 포기하라고, 내려놓으라고, 행하라고, 사랑하라고…….
하나님이 아무리 감동하셔도 반응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사울에게 감동하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바로에게도 감동하셨습니다.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기적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바로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기적을 보이셨지만 바로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감동에 반응하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합니다.
감동에 반응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왜 내겐 감동이 없습니까?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감동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최근에 제게도 하나님의 감동에 반응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조금 끌다가 반응했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잘 되게 하실지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반응하면 결국 잘 되고 복됩니다.

인생은 성령과 성질의 싸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반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질의 감동에 나를 맡기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성질의 감동에 나를 맡기면 사망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에 나를 맡기면 생명이요 평안입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순간마다, 일마다, 사건마다, 관계마다 성령의 감동에 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