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하지 않은 사람

by 이도수 posted Jul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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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나쁜 꾀를 부리는 사람을 간사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지 않을 겁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간사함이 없으며 사랑과 배려심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겁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라는 갈릴리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은 물었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잘 알고 있으며 이미 보았다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을 통해서도 간사하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포장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모습 말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궁금하면 궁금하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좋으면 좋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님도 간사함이 없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자보다 남자가 있는 모습대로 사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아내나 여성도들을 보면 비교적 하나님 앞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순수하고 말랑말랑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못한다고, 모른다고 하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 잘 안 되는 것도 물어 보지도 않고 혼자서 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길을 모르면 지나가는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많은 남자들은 잘 안 물어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성경 속에 보면 여자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는 말씀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인정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소중하고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리며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는 순전한 일을 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간혹 우리는 “내가 실수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해요”라고 말하기를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당신이 지금까지 애 많이 썼어요,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다 알아야지, 남자가 입이 가볍게 그런 말을 해, 낯간지럽게 그런 말 할 수 없어’라고 하지 마세요.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동료들에게 사랑한다고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목사인 내게도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며, 간사한 것이 없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인간적인 성공, 감투, 자존심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아셨고 그를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마음을 아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예수님이 수가성이라는 곳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오자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자기에게도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여자는 남편이 다섯 번이나 바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하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하시면서 ‘내가 그리스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예수님께 부을 때도 그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마리아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돈을 자신이 가로채고자 했었던 간사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은 삼십을 받고 팔아버리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죄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고백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자 목숨을 끊게 됩니다. 잘못했다고, 실수했다고, 죄를 범했다고 인정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고백하고 말하고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서 간사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럼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