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by 이도수 posted Aug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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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간혹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폭군같이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왜 세상에 전쟁과 테러와 가난이 있고, 불의와 부정이 판을 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놓고서, 인간을 지옥에 보내느냐?’는 억지스러운 말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없다고 피력합니다. 만약에 있다고 해도,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세상의 전쟁과 테러와 질병과 사고와 죽음은 인간이 만든 부조리입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이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세상을 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악하며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난 주간에 베트남 봉사 현장에 가서, 이혼 당한 어린 엄마와 아이들의 고통,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고난과 배고픔을 보았습니다. 일거리가 없으면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무력함, 교육 받지 못해서 생긴 가난의 대물림, 질병으로 인한 고통, 전쟁과 테러로 인한 이별과 죽음 등. 그래서 이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치면서 여러 종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려면 해탈해야 한다며 수양과 득도와 선행과 종교적인 행위를 해왔습니다.

 

가난과 절망 속에 빠진 이들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요? , , 치료, 교육, 집 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돕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청지기 삼으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겪는 가난과 고통과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부모는 부모이며, 자녀는 자녀이어야 합니다. 서로 바뀔 수 없으며 바뀌어서도 안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적인 관계는 존중과 사랑과 순종과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사람의 불순종에 대해서 하나님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이며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재판관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판단하고 실형을 선언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살인, 사기, 강도, 강간, 절도 등을 범한 죄인은 죄 값을 받아야 합니다. 재판관이 개인적으로 안다고 그냥 집에 보내고, 또 누구는 개인적으로 모른다고 감옥에 보낸다면 정의로운 재판관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한 책임과 고통과 열매를 인간이 감당해야 합니다.

 

태어나면서 척추가 잘못되어서 괴로움 속에 있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딸을 바라보는 그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요? “하나님, 당신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왜 이런 아픔을 겪게 합니까?

당신이 나의 이런 고통을 아십니까?”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당할 때, 자녀들이 어떤 아픔과 고통을 당할 때에 우리도 똑같이 하소연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어느 날, 이 분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독자를 죽게 했단다. 내 마음은 그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아프단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멸망에 던지셔야 했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도 이루시고 사랑도 이루시는 절묘하고 기가 막히는 방법이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7)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은 인간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마음은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이 자녀가 거짓말하거나 나쁜 짓을 하고 잘못을 범했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자녀를 책망해야 마땅합니다. 부모가 책망도 안 하고 있다면, 잘못되고 있는 학생을 선생님이 꾸지람도 안 하고 내버려둔다면 어떻겠습니까? 꾸중과 책망은 사랑입니다. 책망이 있어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망이 목적이 아닌 것처럼 심판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