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나를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by 이도수 posted Dec 02,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람을 살리는 삶 (막7: 1-23)

만약,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차를 운전해서 100미터 정도를 달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막 안전벨트를 하려는 순간 교통경찰에게 단속됩니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누구든 한 번씩은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도나, 차선, 신호라든지 차를 운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위반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불가피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위반하는 경우도 있기도 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운전자에게 교통경찰이 스티커를 발부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 운전자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안전벨트는 사람을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범칙금을 매기고 사람을 겁주고 두렵게 하려는 것이 결코 그 목적이 아닙니다.
교통신호라든지 차선도 사람의 안전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그런 법칙이나 약속을 정해 놓아야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 먹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부러 꼬투리를 잡으려고 노리고 있는 그들 앞에서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에 따르면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잔과 주발과 놋그릇도 손 씻는 것처럼 깨끗이 씻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의 예식이나 형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하면 위생에 좋지 않고 병에 걸리기도 쉽습니다.
손만 깨씃이 씻어도 세균을 없애고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옛날은 더군다나 잘 씻지도 못하고 위생 관념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그릇도 씻은 후에 먹게 하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그것이 목적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었고 율법이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사람을 살리고 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율법에 담겨져 있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밀밭에서 알곡을 먹었다고 제자들을 정죄한 사건이나,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만일, 주일날 여러분이 정말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일 성수하는 것은, 예배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율법이 되어 버리고 외식이 되어 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힘을 얻고 능력을 받고 지혜를 구해서 일상의 삶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리새인들처럼 제도가 되어버리고 사람을 향한 정죄의 명목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6-7절).
사람을 살리며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존경하고 경배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이 목적이 되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율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에게 힘을 주고 지혜를 주고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