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by 이도수 posted Dec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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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막 9: 14-29)

제자들은 많은 무리가 있는 곳에서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논쟁의 주제는 귀신들린 아이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막 변화산에서 돌아왔을 때에 그 논쟁이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에 관한 변론을 했는지 아니면 율법에 관한 논쟁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아 달라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하는 것은 뒷전으로 두고, 아니 하지도 못하고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귀신들림에 대한 것으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림은 왜 왔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도 했을 것입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비슷한 논쟁이 있었던 것처럼, 그 아이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도 논쟁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치료하는 대신에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논쟁만 하고 있었을까요?
그 자리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치료하면 될텐데 왜 논쟁만 하고 있었을까요?
능력이 없으니까 논쟁만 하고 있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논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아비는 논쟁의 현장에서는 믿음을 배울 수 없었나 봅니다.
그 아비는 예수님을 보자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믿음없는 말로 주님께 치료하심을 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귀신을 내쫓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논쟁해야 할 때가 있고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논쟁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논쟁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말하고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는 언제나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한, 둘 다 해야 할 때는 둘 다 해야 하겠지요.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귀신들림이 무엇이고, 귀신들린 이유가 무엇이며
귀신들린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논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와 아비 앞에서, 지금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 그들 앞에서,
그 논쟁은 그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은 귀신을 쫓아낼 능력이 없으니까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능력이 없으니까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그저 논쟁만 하고 있습니다.

논쟁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삶의 능력은 기도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은 기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과 더러움과 추악함을 물리칠 힘은 기도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