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신 바 되어질 때

by 이도수 posted May 14,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린도 지역은 이방 우상이 팽배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방 신전에서 수 천 명의 창기들과 참배자들 사이에서 제사라는 이름하에 온갖 성적 타락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신전들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들이 일반 시장에 유입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제사용으로 동물들을 도축하는 것 외로는 도축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제사 후에 육식 시장에 나온 고기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린도 지역 자체가 우상 숭배가 심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일들이 성행되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서는 고기를 먹는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툼이 생겼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과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먹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대립이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아무 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우상 앞에 그 음식이 놓여졌었다고해서

그 음식을 못 먹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과 고기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 중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그리스오인이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 전부터 율법적으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해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 양심으로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 (고전8:1-3절)

진정한 지식은 많은 것을 알아서 누군가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나름대로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유의 창조주이며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다른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지식을 그들은 진리라고 여겼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는 것은 죄로 여겼습니다.

아무리 무능한 우상이지만 그것을 만들지 말고 경배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쳐졌던 정결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율법의 지식이 그들에게 또한 진리였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교만할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교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은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기 쉬워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나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적어도 무엇인가는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교만한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아는 줄 알고 아는 체 하는 사람은 사실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진 줄 알고, 선 줄로 아는 사람은 사실 아직 되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그의 아신 바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것은 우리 역시도 하나님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것은 우리와 깊은 교제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진지하고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바 되면 하나님이 일을 맡기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안심하고 적절한 것들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신바 되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주변에 덕을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안다는 것 때문에 얼마든지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아는 지식으로 사람들을 얼마나 서로 상처주고 아프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지식을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아신 바 될 때에,

주변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아신 바 된 날마다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