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빈 마음에 임합니다

by 이도수 posted Jan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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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잘 챙기신 것 같다.

제자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되는 것을 원하셨다.

예수님 자신은 어려움을 당해도 제자들은 그것을 피하게 하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그 누구도 실족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선한 손에 한 번 붙잡히게 되면 다시는 그 구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그 구원이 흔들리지 않고 번복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가?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병사들을 앞장 세워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다.

예수님은 자신이 잡히는 그 순간에도 제자들만은 안전하기를 원하셨다.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8-9절)

나를 찾아서 잡으러 온 것이라면 나의 제자들은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의 사람을 챙기시고 살피시는 인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해가 되는 것을 막으시는 의리가 있으신 분이셨다.

내게도 예수님의 그 인정과 의리와 돌보는 마음이 넘치기를 간구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서 칼을 휘두르다가 한 사람의 귀를 벤다.

예수님은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게 될 것이라 하시며 칼을 다시 꽂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그 고난의 국면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겠다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

즉, 당신에게 찾아 온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통스럽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죽음의 잔을 기꺼이 마시겠노라고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모습과는 정반대로 대비되는 인물이 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사위인 또 다른 대제사장인 가야바라는 사람이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14절)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죽겠다고 하시는데, 가야바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백성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겠노라고 하시는데, 가야바는 희생할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희생과 헌신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지도자의 최고의 모델이셨다.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고 포기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으시고 귀하게 쓰신다.

 

사실 시대마다 대제사장은 한 명이어야 하지 결코 두 사람이 될 수 없다.

많은 제사장들이 있지만 대제사장은 한 사람이어서 그가 죽으면 다른 제사장이 대제사장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장인과 사위가 동시에 대제사장이었다는 얘기는 속된 표현으로 '해먹었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영적 지도자인 대제사장이 이 정도였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도자가 아니라 착취자이며 핍박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하게 된 것이다(눅3:2).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성전에 임해야 하며 대제사장에게 임해야 하건만,

성전과 제사장이 너무나도 타락해버려서 말씀이 임할 수 없어서 빈들에 임한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비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된다.

능력있는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인데,

자기를 부인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가난하고 빈 마음에 임하게 될 것이다.

내 것만 챙기고 내 안위만 구하며 다른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수 없다.

다른 이들을 돕고 섬기며 어떻게 잘 되게 해줄까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빈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빈 마음에 말씀으로 채우시고 능력의 삶을 살게 하실 것이다.

 

주님, 오늘도 빈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