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가 되자

by 이도수 posted Mar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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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믿는 사람을 잡아 결박하고 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데까지 앞장섰던 핍박자 사울이 핍박을 받는 자가 되었다(행9장)

사울은 다메섹에 거하면서 각 회당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게 된다(20, 22절).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구원자 예수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더군다나 핍박에 앞장섰던 사람이었고 잘못된 진리에 깊이 빠져있었던 사람이라서

더욱 열심히 예수를 전하며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사울이 무엇이든 열심이었던 것도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 하나의 이유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사울은 열심히 힘있게 예수를 증거하게 되었다.

 

그는 열정적인 전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

예수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던 자가 예수를 증거하고 다니니 얼마나 증오를 받게 되었을까?

결국 유대인들이 사울을 잡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켜서 있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사울은 광주리에 타서 성벽에서 달아 내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다(25절).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도 제자들을 만나서 사귀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핍박자 사울이 언제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되었냐고, 거짓이 아니냐고, 예수믿는 성도들을 다 잡으려는 기만과 술수라는 의심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사울을 믿어주지 못하고 제자들은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때에,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려지는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간다.

바나바는 사울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고, 예수님이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고, 그가 다메섹에서 얼마나 담대히 복음을 전했는지를 말한다.

결국, 바나바의 헌신적인 중재로 말미암아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고 예루살렘에 출입하게 되었다(27-28절).

 

바나바가 있었기에 사울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게 잘 소개해주지 않았어도 어떤 방법으로든 사울은 복음을 전하긴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빠른 시간안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많이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사울 나름대로 독자적인 복음전도자로 사역을 진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나바, 이름만 들어도 평안과 위로가 되는 이름인 것 같다.

그는 밭을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긍휼의 사람이기도 했다(행4장).

사실 우리도 누군가의 바나바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모습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바나바가 부모, 남편, 아내일수도 있고 형제, 직장 동료, 선배, 혹은 후배일수도 있다.

분명히 내게도 바나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탈북자가 공무원이 되어서 사회복지 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TV에서 잠시 보았다.

그는 탈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회에서 잘 적응하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돕고 있었다.

본인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얼마나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그 일을 하고 있는지,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탈북자들의 바나바였다.

 

바나바가 되자.

직장에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좀 챙겨주고 알려주고 도와주자.

이웃집에 누가 이사오든지, 어떤 일들이 있을 때, 섬겨주고 도와주자.

누가 알겠는가? 나를 통해서 그 누군가가 사울이 바울이 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