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 일어난 격분

by 이도수 posted Apr 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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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큰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덴으로 배를 타고 내려온다.

그리스의 아덴은 우리도 알고 있는 것처럼 철학과 종교와 문화의 도시이다.

아테나라는 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라고 부를 정도로 수 많은 신들을 믿던 도시였다.

수많은 신전들, 사당들, 신상들, 제단들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행17:23)이 있을 정도였다.

아테네는 문화적으로는 세련되고 철학적인 자긍심이 있었던 도시였지만,

비기독교적인 사상과 도덕적인 타락과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도시였다.

이렇게 아테네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바울은 "마음에 격분"(행17:16)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3대 철학자의 도시였다.

에피쿠로스로부터 시작된 정신적 쾌락주의 학파가 있었으며 이성을 중심으로 한 스토아학파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종교, 철학, 인문학, 수사학 등이 화려하게 발달한 아테네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어리석은 우상에 잠겨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영적인 분노와 내적인 고통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전도여행이나 구제 사역을 위해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특별히 마음이 격분이 되는 나라가 있었다.

대만은 거의 모든 집에 '빠이빠이'라는 신당을 모셔놓고, 종일 향과 촛불을 켜놓고 그곳에 수시로 복을 비는 모습을 보았다.

인도나 네팔에서는 아직도 사원에서 동물을 잡아 제사하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동물을 잡는 제단 주변에서 붉고 흥건히 적셔있는 피를 보면서 역겨운 피비린내를 맡기도 했었다.

일본에도 수많은 잡신들이 존재한다고 하며, 일본국립박물관 안에는 절반 이상이 우상들과 귀신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작은 신상이 점점 귀신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신상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캄보디아, 아이티,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우상 뿐만이 아니라 가난과 무지와 착취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보면서,

심히 안타깝고 슬퍼서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었다.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그런 격분이 충분히 이해되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믿어진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로 불려지는 그 당시 종교와 도덕 문제를 강론하고 재판하는 법정에서 설교를 하게 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24-31)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과 신당과 제단들이 만들어져 있는 아덴의 모습에 격분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지 못하는 영적 교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며,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영혼들을 향한 긍휼이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거룩한 분노와 영혼에 대한 긍휼로 인해서 아시아와 유럽 땅에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이 품었던 거룩한 분노와 영혼을 향한 긍휼과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가난과 억압과 착취와 무지 가운데 고통받고 있는 영혼들에게,

우리를 통해서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