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들도 마찬 가지이지만, 특히 자녀 양육에 대해서는 누구도 큰 소리칠 수 없는 듯하다.
부모가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해도 자녀가 잘못되면 부모의 인생은 잘 살았다고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부모가 특별히 잘난 것이 없는 듯하게 보여도 자녀가 잘 되면 그 부모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는 가장 큰 관심이며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책과 세미나들이 있지만 마음먹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것이 자녀 양육이다.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녀 양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도 하고 기도하며 살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 중에,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다윗이 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역시 그 지혜로움에 있어서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존경받는 아버지 다윗 밑에서 나온 아들도 역시 존경받으니, 다윗은 훌륭한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녀 양육 차원에서 다윗은 자녀들을 잘 양육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윗이 나이 많아 왕의 자리를 후계자에게 물려 주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에,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그의 형인 아도니야는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려고 항거를 일으켰다 (왕상1장).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어서 어린 여인을 몸종으로 둘 정도로 노쇠한 상태였기에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 왕이 아직 후계자를 임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이다.
적절한 때에 후계자를 임명하지 않아서 이런 항거가 생긴 것에 대해 다윗의 잘못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들 간에 권력 다툼이 생길 수 있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해서 이런 파경을 미리 불식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기력이 쇠해서 정상적인 왕의 일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역할을 지혜롭게 해내지 못했다.
다윗은 또한 아도니야를 한 번도 섭섭하게 한 일이 없을 정도로 훈계에 실패한 아버지였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1:6)
자녀가 서운해하고 섭섭해 할까봐 부모로써 함부로 야단을 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는 잘 하겠지,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아이를 짜증나게 하면 더 성질 나빠질 수 있어'라고 합리화하면서
자녀 양육을 회피하거나 적절한 가르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분명히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해야 한다.
그것이 자녀를 향한 사랑이다.
다윗 왕은 아들 아도니야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려고 책망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책망하지 않은 아들 아도니야는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다.
이복 형제이긴 하지만 형제끼리 원수가 되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자녀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려다가 더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자녀를 망치는 최고의 길은 자녀를 책망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책망하지 말라.
교만하고 악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책망하지 말라.
그러나 자녀가 잘 되길 원한다면, 책망으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