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by 이도수 posted Mar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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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가서 세마포 옷만 보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이 과연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는가, 믿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립니다.

많은 경우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믿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도마는 예수님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못자국과 창자국에 손을 집어 넣어보아야 믿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 가던 사도가 아닌 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대화하면서도 그 분이 예수님인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예수님인지 알게 되었지만, 이미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난 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전했을 때에 여러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서 세마포를 본 후에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20:7-8)

베드로와 요한이 믿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을 믿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아니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한 말을 믿었을까요?

분명하게 어느 한 쪽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황상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마포가 그렇게 놓여있다는 것을 묘사한 후에 믿었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마포가 엉망으로 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기할 정도로 가지런히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몸만 쏙 빠져나간 듯한, 아니면 그 세마포를 뚫고 나간듯한 느낌을 지울 수없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와 보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느 정도 믿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24:12)

요한도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요20:1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기뻐 뛰며 달려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증거하지는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서 갈릴리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도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을 보고서 제자들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요20:2)

그녀는 무덤에 머물러 있다가 천사를 만났어도 천사에게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20:13)

그리고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20:15)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절)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제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믿음이란 것을 생각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

무덤에서 세마포를 본 순간에 그들은 믿음을 가졌을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들이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도 물론 중요한 부분일 수 있지만,

우리도 믿음에 대해서 그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한 번 믿는다고 끝까지 견고하게 그 믿음을 가졌던가요?

믿음이 생기면 결코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가졌던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오락가락한다는 것입니다.

믿을 때는 하늘을 찌를 것 같더니만, 믿음이 추락할 때는 정말이지 곤두박질을 치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었을지라도, 그 믿음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세마포를 보고 부활을 믿었을 수는 있어도 확고하게 부활신앙이 그들의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보았다는 여인의 말을 믿지 못했고,

내가 직접 보아야겠다고 하기도 하고, 만져보아야 믿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제자들도 믿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한 번 가지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단회적인 듯 합니다.

지금 성령 충만하다고, 내일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늘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주님께 구하며 소망할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제자들은 그렇게 믿음이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책망과 꾸지람을 들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은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마리아야~~~~"(요20:16)

마리아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우리 주님은 믿음없는 우리를 호통치거나 꾸짖기도 하시지만,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평안할찌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격려하시고 사랑을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참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내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